목요시사회 '비포 선라이즈'
기사입력 1996년 03월 27일 18시 03분
**우연한 첫 만남, 운명적 사랑으로 **지성-감성 바탕… 잔잔한 하룻밤 러브스토리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기차여행, 문득 누군가 옆자리에 와 앉을 때의 두근거림. 은은한 장미향의 스킨냄새와 뒤섞인 설렘과 기대, 미지의 세계에서 펼쳐질 낯선 사람과의 몽환적인 데이트.
`비포 선 라이즈'(Before Sunrise)는 바로 이러한, 마치 소설속에서나 있음직한 젊은 남녀의 풋풋한 하룻밤 사랑이야기를 섬세하면서도 아름답게 영상화한 작품.
`사랑에 관한 섬세하고 지적인 탐구'라는 카피처럼 영화는 두 남녀,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의 지성과 감성에 바탕을 두고 잔잔하게 펼쳐진다.
유럽횡단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와 셀린. 어떤 연유로 어디를 가는지도 묻지 않은 채 둘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친숙해진다.
서로의 순수함에 이끌린 두 사람은 다음날 아침 미국행 비행기로 떠나는 제시의 제안으로, 이때서야 비로소 서로의 이름을 얘기하며 빈에서의 하룻밤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한다.
어스름 황혼에서부터 밤을 거쳐 여명을 맞을 때까지 빈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는 제시와 셀린. 불과 하룻밤, 시간으로는 10여시간 남짓 동안 이들이 보여주는 섬세한 감성과 이성의 충돌은 실로 숨막힐 듯 관능적이다.
뜨거운 입맞춤도 격정적인 섹스도 없지만 사랑과 실연의 아픔이나 결혼과 인생의 의미 등 극도로 순수한 두 사람의 정담이 오히려 에로틱 무드를 자아낸다.
도나우강변에서 만난 거리의 시인. "우린 목적지를 알지 못해요/ 삶에 머물며/ 강물에 떠가는 가지처럼/ 흘러가다 현재에 걸린 우리/ 난 당신을 이끌고 당신은 나를 이끄네."
제시와 셀린은 운명적인 사랑을 예감한다. 음악이 가득한 카페에서 전화놀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나타내는 대목은 정겹기 짝이 없다.
어릴 때 할머니 유령을 봤대. 그때 정이 든 것 같아. 키가 크고 약간 촌스러, 그치만 내가 딴 델 볼때 날 보는 느낌이 좋아》.
그러나 사랑은 혼자 되기 두려운 두 사람의 일종의 도피라면서, 사랑만큼 이기적인 것은 없다면서 서로의 감정을 이성의 뒤로 감춰둔 채 쩔쩔매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안쓰럽게 한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 헤어지는 두 사람이 끝내 다시 만날 기약을 하지 않으려는 듯한 `이성의 무장'엔 조바심마저 인다.
그러나 폭발하는 감정. 막 떠나려는 기차에 매달린 채 "다신 만나지 않는 거, 난 그러기 싫어" "나도 그래" "왜 말 안했어" "네가 원치 않을까봐"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일품. 지난해 의 최우수감독상(은곰상) 수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