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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했지만 마음이 무거웠어요."
이날 승리의 주역은 단연 여봉훈(23)이었다.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해 중원을 장악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투지와 왕성한 활동량으로 서울 허리를 붕괴시켰다.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광주의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여봉훈의 마음은 무거웠다. "모처럼 승리를 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무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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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봉훈과 이명주 모두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후 이명주의 발목이 여봉훈의 가랑이로 빨려 들어갔다. 이명주는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결국 전반 36분 그라운드를 벗어났다.
여봉훈은 "정말 고의가 아니었다. 강팀을 맞아 더 열심히 해보려다가 생긴 일"이라며 "이명주 선배께서 부상을 하셔서 경기 이후에도 계속 마음이 답답하고 죄송했다"고 했다.
여봉훈은 경기 종료 직후 이명주의 연락처를 수소문 했고 밤 11시가 훌쩍 넘어 사과 메시지를 전했다. '뜻하지 않게 부상을 입힌 것 같아 너무 죄송하다. 절대 고의성 없이 열심히 뛰려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부디 큰 부상이 아니길 바란다.'
이명주도 여봉훈의 진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했고 먼저 연락 줘서 고맙다. 나는 괜찮으니 너무 신경쓰지 말고 다음 경기도 열심히 하길 바란다.'
여봉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연락을 드렸고 사과를 했다. 꼭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이명주 선배께서도 정말 흔쾌히 제 마음을 받아주시고 격려를 해주셔서 죄송하면서도 감사했다"고 말했다.
안동중-안동고를 거친 여봉훈은 2014년 스페인 2부 리그 알코르콘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청운의 꿈을 품었지만 벽이 높았다. 자리를 잡지 못한 여봉훈은 시즌 도중 3부 리그 마리노 데 루안코로 임대를 갔다. 그리고 2015년 포르투갈 리그 질 비센테로 둥지를 옮겼다.
고된 이역만리 생활, 여봉훈은 지난 겨울 포르투갈 전지훈련을 온 남기일 감독의 눈을 사로잡아 광주 유니폼을 입었다. 리그 초반엔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다 서서히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여봉훈은 "감독님과 코치 선생님들께서 세세한 부분을 짚어주신다.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끔 강하게 질책하시기도 한다. 그것 역시 관심과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더 성장하기 위해선 모두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광주는 서울을 잡고 최하위 탈출 발판을 마련했다. 그 중심에 여봉훈이 있다. 여봉훈은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이다. 지금까지 이런 저런 어려운 일들이 많았는데 그 때 마다 도움을 주신 감사한 분들이 많다. 내게 기회를 준 광주에도 감사한 마음 뿐"이라며 "꼭 K리그에서 성공해서 은인들과 팀에 보답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