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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가빈 시대'였다.
지난 두 시즌 동안 '로봇' 가빈 슈미트(삼성화재)를 막을 적수는 보이지 않았다. 올시즌 개막 전 프로배구 남자팀들의 최대 화두는 '가빈 대항마'를 구하는 것이었다. '원조 괴물' 안젤코 추크(KEPCO)가 그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안젤코는 예전만 못했다. KEPCO 공격의 핵으로 맹활약했지만 기량이 가빈에 못 미쳤다. 그러나 복병이 나타났다. 슬로바키아 출신 네맥 마틴(대한항공)이었다. 신영철 대한항공 감독은 딱 두가지만 바랐다. 팀이 어려울 때 한방을 터뜨려주는 것과 강력한 서브로 상대 리시브를 흔드는 것이었다. 마틴은 신 감독의 기대에 100% 부응했다. 한국 무대 적응을 비교적 빨리 마쳤다. 1라운드부터 펄펄 날았다. 정규리그 서브 부문에서 1위(세트당 평균 0.500개)를 차지했다. 트리플크라운(서브·블로킹·후위득점 각 3개 이상)도 세 차례나 달성했다. 트리플크라운은 한시즌 총 10개 안팎으로 나오는 진기록이다. 신 감독은 마틴의 기량 뿐만아니라 성품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용병답지 않게 팀에 헌신하려는 자세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다소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선수단에 빨리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마틴은 불의의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지난 현대캐피탈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몸을 푸는 과정에서 오른어깨에서 '뚝'하는 소리를 들었다. 참고 뛰었지만 팔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아픔은 챔피언결정전까지 계속됐다. 어깨에 테이핑을 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2차전이 끝난 뒤 통증은 더 심해졌다. 신 감독은 마틴에게 출전 의사를 물었다. 벼랑 끝에 몰린 터라 마틴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선수를 혹사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틴에게 돌아온 답은 "괜찮다. 뛰고싶다"였다. 신 감독은 마틴의 강한 출전 의지를 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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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빈 대항마'라는 자부심에 대한 발로였다. 사실 마틴은 삼성화재전에서 블로킹보다는 공격에 더 신경을 써야했다. 정규리그 삼성화재전에서 세트당 0.385개를 기록했다. 6개팀 중 현대캐피탈(0.318개)에 이어 블로킹 성공률이 낮았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1세트에서만 양팀 최다인 4개의 블로킹을 기록했다. 이중 높은 타점에서 내리꽂는 파괴력 넘치는 가빈의 스파이크를 3개나 잡아냈다. 4세트에서도 9-7로 약간 앞선 상황에서 가빈의 스파이크를 막아냈다. 득점도 불을 뿜었다. 홀로 39득점을 폭발시켰다. 공격성공률은 64.70%였다. 마틴의 부상투혼은 벼랑 끝에 몰렸던 대한항공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인천=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