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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구 삼성화재 주장 고희진(31)의 많은 별명 중 선수가 가장 아끼는 건 '현대킬러'다. 라이벌 현대캐피탈을 만나면 유독 집중력과 정신력이 살아난다. 적지 않은 나이와 부상이 많아 경기력의 기복이 심하다. 시동이 늦게 걸린다.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고희진이 부진할 때마다 고민한다. '이 걸 빼, 아니면 기다릴까'. 그러면서도 신 감독은 고희진에게 늘 주전 센터 한 자리를 맡긴다.
고희진은 삼성화재의 정신적 지주다. 코트 안에서 삼성화재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것은 고희진 때문이다. 배구에선 한 명의 선수가 꼭 살아야 팀이 승리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 역할을 할 선수가 삼성화재에선 고희진이다.
고희진은 5득점을 올렸다. 결코 잘 했을 때 기록할 득점은 아니다. 하지만 5득점 모두 블로킹 득점이다. 그중 마지막 5세트에서 결정적인 순간 블로킹 두 개로 승기를 잡았다. 현대캐피탈은 그때부터 흐름을 놓쳤고 가라앉았다.
고희진은 자신의 득점때 유독 '오버 세리머니'를 펼친다. 블로킹 하나 성공하면 코트를 큰 원을 그리면서 미친듯이 뛰어다닌다. 그럼 후배 선수들도 가만 있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삼성화재 선수들 대부분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게 된다. 이게 상대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반대로 삼성화재는 상승 기운을 더 타게 된다. 그래서 삼성화재 선수들은 고희진을 분위기 메이커라고 부른다. 경남 남해 출신으로 마산중앙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고희진의 억양에는 경남 사투리가 진하게 남아 있다. 그는 경기가 안 풀릴 때도 선수들을 자극하고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날 삼성화재는 1~2세트 때 현대캐피탈 세터 최태웅의 현란한 볼배급에 휘말려 고전했다. 세트스코어 0-2로 끌려갔지만 3세트부터 내리 세 세트를 따내면서 3대2 역전승했다. 고희진은 "우리 삼성화재는 이렇게 생각한다. 안 될 때도 언젠가는 한 번은 기회가 온다"면서 "그 기회를 잡으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화재는 6연승을 달렸고 12승1패(승점 32)로 선두를 질주했다. 대전=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프로배구 전적(14일)
삼성화재(12승1패) 3-2 현대캐피탈(6승8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