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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더러 '딸이냐?' 물은 삼성 구자욱에게는 "영 페이스로 다시 갈게요"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공기소총 10m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밀려드는 행사와 방송 등 일정을 치르면서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았던 반효진은 올해 마지막 대회인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를 2관왕으로 화려하게 마감했다.
대구 소속으로 제105회 전국체전에 출전한 반효진은 11일 경남 창원국제사격장에서 열린 공기소총 여자 고등부 결선에서 253.6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53.6점은 대회 신기록이자 역대 한국 여자 고등부 결선 신기록, 비공인 여자 주니어 세계 신기록이다.
반효진은 본선 631.8점으로 동료들과 함께 1천878.7점을 합작해 단체전 금메달까지 얻었다.
경기 후 결선 사격장에서 곧바로 취재진과 만난 반효진은 "체전을 위해 훈련하는 동안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제 할 것만 하려고 했고, 결과는 만족한다"면서 "2024년은 제가 은퇴하고 난 뒤에도 절대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효진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지난해 전국체전에서는 개인전 5위, 단체전 7위에 그쳤다.
그는 "작년 전국체전은 대회 직전까지 잘하다가 정작 본 대회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그때 기억을 되새기며 이번에는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며 기뻐했다.
올림픽에서 영광스러운 시상대에 섰던 선수들은 올림픽이 끝난 뒤 심심찮게 슬럼프를 겪는다.
갑작스럽게 많은 것이 달라지고, 훈련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 때문이다.
반효진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춘천시장배와 봉황기는 각각 결선 3위와 2위를 했고, 경?청장기에는 본선에서 1위에 해당하는 점수를 쏘고도 경기 후 복장 검사에서 적발돼 실격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달 초 대구시장배 대회 개인전 우승으로 궤도에 복귀한 반효진은 전국체전에서 스스로 만족할만한 마침표를 찍었다.
반효진은 "올림픽 마치고 컨디션 회복을 바로 하지 못해 점수가 아쉬운 경기가 몇 번 있었다. 대구시장배부터 분위기 올리려고 노력했다"면서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는 무조건 1등 해야 한다는 부담이 많이 있었다. 이제 그런 것도 이겨낼 방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비결은 특별한 게 아니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효진은 "금메달 딴 순간은 잊었다. 기본을 지키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경찰청장배에서 사격복 단춧구멍이 0.4㎝ 늘어나 실격했던 것도 좋은 경험이 됐다.
반효진은 "사격복이 점점 늘어나서 그렇게 됐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체크해서 이런 아쉬운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그래도 성적이 안 나오다가 그 대회에 본선 632점을 쏴서 1등을 했다. 규정에 걸려서 실격했지만, 점수에 만족하고 넘겼다"고 말했다.
사대에 서면 누구보다 냉정하게 조준경을 바라보지만, 총을 내려놓은 뒤에는 평범한 여고생으로 돌아간다.
반효진은 지난달 2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 시구를 하러 갔다가 말 그대로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었다.
조카와 함께 시구 연습을 위해 실내 연습장을 찾았는데,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구자욱이 무심코 '딸이냐?'고 물어본 것이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도 조카와 영상통화를 했다고 말한 반효진은 구자욱에게 "다음에는 좀 더 어려 보이는 '영 페이스'로 라이온즈파크를 찾겠다"면서 "제가 그때 마음껏 기운을 뿌리고 갔으니까, 삼성도 플레이오프에서 힘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한 취재진이 '원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얼굴 사진을 안 올리는가?'라고 질문하자 "원래 경기 사진만 올린다. 요즘 얼굴에 살쪄서 찍기 싫은 것도 있다. 살 빼고 올리겠다"며 웃었다.
4bu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