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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엘리트 스포츠 사망의 날" 진천선수촌이 움직이고 있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9-01-28 05:30



"오늘은 엘리트 스포츠 사망의 날입니다."

정부가 심석희에 대한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력 의혹에 대한 해결책으로 엘리트 체육계의 대수술을 예고한 직후 엘리트 체육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5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체육계 비리 및 성폭력 근절대책' 언론 브리핑을 통해 체육계 혁신을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날 오전 2019년 제1차 사회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함께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도 장관은 "스포츠의 가치를 국위선양에 두지 않겠다"면서 엘리트 체육의 혁신을 선언했다. 학생선수 관리 시스템 혁신, 합숙 폐지, 소년체전 폐지, 병역특례와 연금제도 개선, 선수촌 전면 개방 등이 언급됐다.

엘리트 체육의 근간인 '합숙, 체전, 병역, 연금 폐지'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브리핑 직후 체육인들은 참담한 심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유승민 IOC선수위원은 자신의 SNS에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라는 한줄로 절망감을 표했다. 펜싱 국가대표 신아람은 '문제 있으면 다 없애야겠네. 그럼 뭐가 남아날까'라며 폐지, 징계 일변도의 정책에 반대했다. '성적지상주의는 어디나 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데 욕심이 생기지 않는 인간은 없다'라는 한줄로 성과주의 사회에서 스포츠만 유독 문제삼는 시각을 비판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유명 체육인은 "엘리트체육 사망의 날"이라고 선언했다. "불과 1년 전 평창올림픽 현장에서 남북단일팀을 추진하고, 금메달리스트와 사진 한번이라도 찍으려고 혈안이 됐던 의원님, 장관님, 정치인들이 이제 와선 '엘리트 선수도, 금메달도 필요 없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위선양을 하지 않는다면 국가대항전인 올림픽, 월드컵에서 '우리는 국가대표'라는 자부심, 태극마크의 의미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라며 개탄했다. 주말새 엘리트 체육인들의 분노와 위기감이 퍼져나갔다.


성폭력 체육계 대책 발표하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가운데),유은혜 교육부 장관 겸 부총리,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의 지도자,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대해 위기의 전문체육을 살려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종목 이기주의, 금메달 지상주의 속에 이웃과 선수의 아픔을 돌보지 못한 데 대한 공동의 책임 의식, 통렬한 반성과 함께 한국 엘리트 체육의 성과와 잘해온 부분을 후배들을 위해 계속 살려나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진천선수촌 지도자협의회의 한 감독은 "모든 금메달이 폭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정부는 묵묵히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직분을 감당해온 체육인 모두를 적폐로 낙인 찍고 있다"면서 "성폭력, 폭력 등 잘못을 저지른 지도자와 관계자들을 당연히 엄벌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빌미로 엘리트 체육인들을 모두 죄악시하고,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물한 과거를 부정하고, 엘리트체육의 근간이 돼 온 모든 것을 싸잡아 비난하고 폐지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 그동안 잘해온 것은 계속 잘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면 된다.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선수, 지도자 모두가 행복한 선수촌을 만드는 정책, 프로그램, 제도, 문화를 만들어갈 때"라고 강조했다.


전국소년체전 폐지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하룻만에 5000여 명의 체육인들이 서명했다. 26일 '소년체전 폐지 반대' 청원에서 청원인은 '지금도 소년체전을 향해 달리고 있을 선수들의 꿈을 짓밟는 어이없는 정책'이라면서 '코치, 감독 등이 학생선수들을 폭행하는 것에 대한 정책이 소년체전 폐지가 아닌 학생선수를 폭행한 코치 또는 감독을 처벌하는 제도가 옳다고 본다'고 썼다. 도 장관은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의 운영방향에 대해서도 보다 교육적인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소년체전을 폐지하고 전국체전 고등부와 통합하여 학생선수, 일반학생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함양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학생체육축제 형식으로 전환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대표, 올림피언을 꿈꾸는 체육 영재들의 소년체전을 '축제'로 만들겠다는 정책에 체육인들과 학생선수,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다. 국영수 중심,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학교체육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정부가 적극 장려하는 학교스포츠클럽 정책도 아직까지 일부 학교, 일부 학생들만의 전유물인 상황, 인구 감소 추세속에 각종목 어린 유망주들이 급감하는 현실에서 소년체전을 '축제'로 만드는 정책에 대해 현장에서는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가 모든 스포츠 행사를 '축제'로 만드려는 정책에 대해 스포츠 본연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정부는 이미 엘리트 체육인들의 거센 반발을 예상하고도, 초강수를 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행복한 스포츠 세상을 위해 오래 된 틀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도 장관은 "대한민국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꿀 마지막 기회"라는 말로 절박감을 설명했다. 도 장관은 "단순히 운동부를 축소하거나 엘리트체육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는 방향이 아니다. 폐쇄적, 폭력적인 구조를 바꾸고 운동선수는 공부하고, 일반학생은 운동하는 교육환경, 정정당당한 스포츠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운영비, 경산비, 행정보조비에 대한 제한은 선수에 대한 것은 아니다. 선수를 보호하면서 문제점을 고쳐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금메달을 포기하는 거냐, 국위선양은 접는 거냐, 스포츠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선수를 포기하는 거냐'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한 생각"이라며 강력한 쇄신의 의지를 표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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