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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발부터 50m 구간을 통과할때까지 걱정이 컸다. 출발 반응속도는 0.65로 빨랐지만 초반 50m 기록은 23초76, 4위였다. 금메달 경쟁자인 닝 저타오(중국)가 23초02로 50m를 1위로 통과했다. 200-400m 레이스가 '오버랩'됐다. 50m 지점 턴을 하고 5초가 지나자,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환호성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였다. 경쟁자들을 한 명, 두 명 제쳤다. 마지막 10m, 혼신의 역영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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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되찾는데 나흘이 걸렸다. 과정은 험난했다. 박태환은 나흘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펼쳤다. 첫 출발부터 꼬였다.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을 일주일 앞둔 12일 자유형 400m 테스트를 마친 뒤 어깨 등 허리에 무리를 느꼈고 몸이 무거워졌다. 스트로크마저 뻑뻑해졌다. 그 결과 21일 200m 결선에서 1분45초85로 3위에 그쳤다. 충격이 컸다. 도하와 광저우대회에서 잇따라 200m를 제패했던 '챔피언' 박태환은 4년전 광저우에서 수립한 최고기록 1분44초80에 미치지 못했다. 후유증은 400m에서도 나타났다. 자유형 400m 결선에서 3분48초33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충격이었다. 1위를 차지한 쑨양(중국)의 기록(3분43초23)보다 5초 이상 느린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의 기록이었다. 박태환은 "아시안게임이 한국에서 열리는 만큼 무게감이 많았는데 이겨내지 못한게 아쉽다. 200m 경기 후 정신적, 심리적으로 많이 지쳤다. 그런 부담감까지 이겨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400m 레이스 이후 이틀만에 열린 100m 결선, 반전이 일어났다. 비록 금빛 물살을 가르지는 아니었지만 그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그의 마음가짐을 바꾸게 해준 가족의 '힐링' 한마디가 큰 역할을 했다. 24일 400m 계영 예선을 치른 뒤였다. 아버지 박인호씨가 경영하는 팀 GMP의 '매형' 김대근 실장이 24일 박태환에게 말을 건넸다. "태환아, 내려놓자. 편안하게 하자." 21일부터 3일간의 레이스를 모두 지켜본 김 실장이 박태환에게 수영에 대한 얘기를 꺼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200m를 마치고는 부담이 될까봐 말을 하지 못했다. 400m 후에는 충격이 클까봐 어쩔수 없이 말을 못했다. 그러나 호주에서 수영 클럽을 운영했던 김 실장은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괜찮아. 네가 메달을 따도, 못따도 좋아. 편안하게만 해." 박태환에게 돌직구도 던졌다. "지금 롤링이 없어졌어. 박태환이 '박태환의 수영'을 못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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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도 경기를 마친 뒤 같은 말을 했다.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해 욕심이 생기긴 했지만 마음을 비우려 했다.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부담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하자 "그렇게 보이면 다행"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았다. 박태환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극복'이었다. 그는 "잘해도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그나마 몸이 괜찮아지면서 최고 기록은 아니지만 예선보다 좋은 성적으로 레이스를 마쳤다. 아시아에서 47초대 기록이 나오기 힘든데 그 기록을 낸 선수와 함께 레이스를 하고 시상대에 같이 올라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은빛 질주로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다섯번째 메달을 목에 걸며 아시안게임 역대 한국인 선수 최다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박태환은 총 19개(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 메달로 사격의 박병택(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6개)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박태환의 질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혼신의 레이스를 예고했다. "아시안게임에서 3번 뛰니까 메달을 많이 딴 것이다. 앞으로 1500m와 단체전(이상 26일)에서 열심히 해서 더 많은 메달을 딸 수 있도록 하겠다."
인천=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