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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눈가에 눈물이 핑도는 느낌이었다. 금메달 이야기에 얼굴에는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위기가 찾아왔다. 병마였다. 1994년부터 2006년까지 햇수로 13년간의 군생활을 하다보니 '몰톤 신경종'이라는 병을 얻었다. 발을 꽉 올메는 군화와 사격화를 신다보니 발의 신경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것. 통증에 오래 걷기도 힘들었다. 2006년 신경을 자르는 수술을 결심했다. 재활 후 다시 총을 잡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나섰다. 제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3자세에서 31위, 복사에서 43위에 그쳤다. 10m 공기소총에서 16위에 오르는데 그쳤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나서지 못했다.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위기였다. 은퇴도 생각했다. 그 때 대표팀 후배인 한진섭(33·한화갤러리아)이 광저우 3관왕을 차지했다. 승부욕이 생겼다. 다시 현역 연장의 길을 택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복사 대표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자존심을 살렸다. 27년간의 현역생활 여기에 병마까지 이겨낸 인간 승리의 상징이었다.
박봉덕은 자신의 영광보다는 한국 소총의 미래를 걱정했다. 경기 후 만난 박봉덕은 "거의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배들이 치고올라와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쉽다"고 걱정했다. 특히 곧 폐쇄될 태릉사격장에 대해 말했다. 박봉덕은 "예전에 다들 태릉에서 훈련하며 좋은 성적을 냈다. 없어진다니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소총이 권총보다 선수들이 적다. 내 실력이 된다면 아시안게임은 계속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인천=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