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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D-30]소치의 '히든카드' 여자 컬링대표팀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4-01-08 07:10


사진제공=대한컬링경기연맹

한국은 동계올림픽에서 총 45개(금메달 23개, 은메달 14개. 동메달 8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모두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에서 나왔다. 30일 앞으로 다가온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선 새로운 종목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히든카드' 여자 컬링 대표팀(신미성 김지선 이슬비 김은지 엄민지·이상 경기도청)이 주인공이다.

컬링은 약 20㎏의 스톤을 빙판에서 밀어 표적 중앙에 더 가까이, 더 많이 붙인 팀이 승리하는 종목이다. 스톤을 정확히 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판에 말을 옮기듯 전략적인 요충지를 선점하는 머리싸움이 중요해 '빙판의 체스'라고 불린다. 브룸(빗자루 모양의 솔)으로 얼음을 닦으면서 움직이는 스톤의 속도와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해야 한다. 머리가 좋고, 손놀림이 예민한 한국 선수들에게 잘 맞는 종목이다.

여자 대표팀의 2012년 캐나다 세계선수권대회 4위 신화가 있기 전까지 컬링은 팬들에게 생소했던 종목이다. 아무도 예상못한 기적의 드라마였다. 체코와의 첫경기에서 3대6으로 졌을 때만 해도 '역시나'였다. 자비로 현지에 날아간 정영섭 감독은 선수들을 다그쳤다. "그동안 고생을 생각해보자. 잃을 것이 없다. 우리 실력이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 거짓말처럼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 스웨덴을 상대로 9대8 승리를 거두며 자신감을 얻었다. 이 후 얼음 적응에도 성공하며 준비한 플레이를 마음껏 구사했다. 쓸쓸히 떠났던 이들은 환대 속에 고국의 땅을 밟았다.

달콤함은 잠깐이었다. 대표 선발전에서 경북체육회에 패하며 태극마크를 내줬다. 팀워크가 중요한 컬링은 선발전에서 우승한 팀이 그대로 대표팀이 된다. 세계선수권 기적으로 어렵게 따낸 동계올림픽 티켓을 뺏길 위기에 놓였다. '맏언니' 신미성은 "포기할 수 없었다. 오로지 국가대표가 돼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했다. 이들은 2013년 KB금융 한국 컬링선수권대회 겸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천적' 경북체육회를 10대5로 제압하고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자신들이 따낸 올림픽 출전권을 다시 손에 넣었다. 한국 컬링사에서 첫 올림픽 출전이라는 영광도 안았다.

올림픽행이 결정되자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신세계와 KB국민은행이 후원자로 나섰다. 훈련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2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전용 연습장이 없어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훈련하는 곳에서 훈련을 해야 했다. 눈길이 따가웠다. 장비도 문제였다. 외국 선수들은 한경기 끝나면 브러시 헤드를 바꾸는데, 빨아서 써야했다. 때때로 외국 선수들이 버린 헤드를 주어와서 쓴 경우도 있다. 외국 전지 훈련에서도 텃세 때문에 새벽 아니면 한밤중에 훈련을 해야했다. 훈련비가 부족해 민박집에서 직접 장보고 밥해먹으면서 운동했다.

환경은 따뜻해졌지만, 나태해지지 않았다. 대표팀은 소치동계올림픽에 대비해 일본, 중국, 캐나다를 돌며 해외 전지훈련을 했다. 외국의 유명 클럽팀과 연습 경기를 하고, 다양한 빙질을 경험했다. 오전 10시부터 훈련을 시작해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가까이 링크장에서 살았다. 일과가 끝나면 개인 훈련에 들어갔다. 둘째 임신 때문에 팀을 떠난 이현정 대신 들어온 '막내' 엄민지는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든 훈련을 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개인생활은 포기한지 오래다. 신혼인 김지선과 '엄마 1년 차'인 신미성은 장기 해외 훈련을 위해 가정을 뒤로 했다. 컬링 유학 중 만난 중국 컬링 대표선수 쉬샤오밍과 지난해 5월 결혼한 김지선은 신혼여행을 올림픽 이후로 미뤘다. 지난해 2월 첫딸을 얻은 신미성은 육아를 맡기기 위해 친정어머니가 사는 아파트의 아래층으로 이사했다. 아이는 핸드폰 영상을 통해 보는게 전부다. 다행히 가족같은 팀원들이 함께 있어 힘든 생활을 버틸 수 있다. 함께 모인 뒤 훈련불참 한번 없었다. 한명이 부진하면 함께 힘을 모아 극복해나갔다. 꿈을 향해 묵묵히 달려가자 의미있는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오픈에서 강호 중국, 캐나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캐나다 훈련 중 세계 4위 스코틀랜드도 제압했다. 지난 11월 아시아태평양 컬링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섰다. 제26회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은메달을 땄다.

이제 진짜 무대가 눈앞이다. 10개팀이 참가하는 소치동계올림픽은 리그전을 치른 후 1~4등이 토너먼트를 통해 메달을 가린다. 라이벌은 '4강' 스위스, 스웨덴, 영국, 캐나다다. 2, 3차전으로 예정된 스위스, 스웨덴 중 한 팀을 꺾으면 토너먼트 진출이 가능하다. 전지 훈련을 통해 충분한 노하우를 쌓으며 메달에 대한 자신감을 더했다. 대표팀은 "어렵게 시작해 올림픽 무대에 선다. 핸드폰 배경화면도 올림픽 금메달 사진으로 해놨다. 연습때도 올림픽이라고 생각하며 신중히 하고 있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스코틀랜드에서 마무리 훈련 중인 여자 컬링대표팀은 2월6일 결전의 장소 소치로 넘어갈 계획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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