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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평창유치]현재 권력 김연아, 과거 전설 비트를 넘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1-07-07 00:22


김연아(21)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감격의 세리머니였다.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 갱없는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다.

김연아가 독일의 '피겨전설'이자 유럽의 자존심 카타리나 비트(46)를 넘었다. 비트 보다 한발 늦게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미모에서, 지명도에서, 영향력에서 모두 새 여왕이 '원조'를 이겼다.

김연아가 세상에 나오기 전 비트는 전 세계를 호령했다. 피겨의 우상이었다. 1984년 사라예보와 19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에서 2회 대회 연속 여자 싱글 금메달을 차지했다. 세계선수권에서 4차례 정상을 밟았다. 1988년 은퇴했다.

2년 후 김연아가 태어났다. 불모지에서 피겨를 선택했다. 춥고, 배고픈 힘든 여정이었다. 2010년, '7분의 기적'이 완성됐다.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선후 비로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새로운 '피겨 여제'가 등극했다.

공통점은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는 점이다. 외모부터 매혹적이다. 눈길을 끈다. 만인의 연인이다. 비트는 은퇴 후 모델, 방송 해설가 등으로 활약하며 다방면에 두각을 나타냈다. 이번에는 행정가로 변신했다. 뮌헨 유치이사회 의장으로 유치전을 진두지휘했다. 현역인 김연아도 CF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이끄는 '스포츠 방송인'이다.

세월을 초월해 둘은 남아공 더반에서 적으로 만났다. 김연아는 평창, 비트는 뮌헨의 얼굴이었다. 평창이 '새로운 지평'을 내걸자 뮌헨은 대응 전략으로 '뿌리'로 맞불을 놓았다. 동계스포츠의 확산을 위해 아시아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것이 평창의 명분이었다. 김연아가 롤모델이다. 뮌헨은 동계스포츠의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트의 화려한 전성기 시절을 회상했다. 미래지향과 과거의 향수가 충돌했다.

비트는 줄곧 올림픽 유치를 위해 활동한 '구관'이다. 전설로 존중받았다. 김연아는 유치전에는 뒤늦게 뛰어들었다. 일본 동북부 지역의 대지진으로 3월 열릴 세계선수권대회가 4월말로 연기되면서 일정에 차질이 있었다. 5월 21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후보도시 '테크니컬 브리핑' 때 처음 등장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은 김연아 덕분에 평창의 분위기가 훨씬 젊고 밝아졌다고 칭찬했다.

온도 차도 있었다. 비트는 직책이 직책인 만큼 음지에서 IOC위원들을 만나 집중 설득했다. 김연아는 프레젠테이션 외에는 철저하게 대중과 호흡했다. 내외신 기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세계적인 꽃이었다. 남아공 피겨 꿈나무 20여명과도 만났다. '원포인트 드림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드림프로그램은 평창의 트레이드 마크, IOC에 제안한 동계스포츠 저변 확대발전을 위한 전세계 나눔 프로젝트다.

더반은 시공을 초월한 둘만의 얼음판이었다. IOC 위원들은 비트가 아닌 김연아를 선택했다.
더반(남아공)=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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