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술! 제재만이 능사인가?
기사입력 2000년 02월 29일 23시 31분
온나라가 `바꿔' 열풍에 휩싸였지만 유독 야구장에선 고리타분한 복고풍이 불고 있다.
서울시는 29일 잠실구장내 주류판매를 금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야구장에서 술을 판매할 경우 미성년자의 신분을 확인할 현실적인 방안이 마땅치 않고, 술로 인한 안전사고가 우려스럽기 때문이란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미성년자가 술을 마셔선 안되고, 더더욱 술취한 관중들로 경기장 질서가 흐트러져서는 곤란하다. 지난해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전의 관중난동도 따지고 보면 술이 화근이었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방침이 고리타분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이유는 왜일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말그대로 보신주의에서 비롯된 구태의연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LG 두산은 올해부터 3년동안 잠실구장 운영권을 위탁받고 34억원을 투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든다는 꿈에 부풀어있다. 메이저리그 구장처럼 편안한 스탠드에서 맥주 한잔을 들이키는 것도 허용할 참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야구장을 경건한 학교운동장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규제가 심하면 편법이 판친다. 야구장내 주류판매나 반입을 금지시켰지만 해마다 만취관중들로 몸살을 앓았다. 구장밖에서 얼마든지 술을 살수있고, 들여오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무조건 제재가 능사는 아닌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도 이제 19년째다. 그만큼 팬들의 의식은 성숙해졌다. 술취한 팬이 소란을 피우면 나서서 제재할 정도로 대다수 팬들은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졌다.
더욱이 맥주는 술이라기 보다는 음료수의 개념이 된지 오래다. 청소년 음주가 걱정된다면 일반 유흥업소처럼 신분을 확인하면 그만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담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야구장은 즐기는 곳이지 감시를 받는 곳이 아니다.
[권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