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 이러쿵 저러쿵] 크레믈린 K의 비밀
기사입력 2000년 02월 20일 15시 32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크레@린'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 붙은 별명인데, 이런 사람들은 말이나 행동을 예측을 할 수가 없어 주위 사람들을 항상 긴장시킨다.
이것은 무뚝뚝한 성격과는 조금 다르다. 무뚝뚝하다는 것은 단지 말수가 적거나 표현을 잘하지 않는 정도이겠지만, `크레@린'들은 항상 때가 되면 `뭔가'를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놀라게 된다.
연예계에도 주변 사람들을 항상 팽팽한 긴장속으로 몰아넣는 `크레물린'들이 있다.
요즘은 별로 활동하지 않는 K감독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동성애를 그린 단편영화로 주목을 받은 후 요즘 주가를 높이고 있는 영화배우 B씨와 신인 L씨를 발탁해, 장편 데뷔작을 연출할 때 있었던 일이다.
그는 평소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스타일. 말수도 적고, 스태프나 연기자를 대하는 방식 역시 다른 감독들과는 달랐다. 여성적인 면이 많았다.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때까지 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한 채 혼자 살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가 여성스런 성격으로 인해 결혼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어찌됐든 그는 술자리에서 큰 소리 한번 내는 법이 없었고, 술도 조금씩만 마셨다.
때문에 스태프나 연기자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 K감독을 조금은 무섭게 생각하고 있었다.
말수가 적다보니 그의 한마디엔 무게감이 실렸다. 그런데 그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항상 007가방을 자신의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들고 다녔고, 촬영을 할 때도 007 가방을 조연출보다 더 가까운 곳에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흔히 `촬영버스'로 불리는 차안에서 잠을 잘 때도 무릎 위에 007 가방을 놓고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 007가방을 소중하게 챙기다보니 사람들이 `과연 저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진 게 당연한 일. 하지만 보여달라고 할 수도 없었고, 항상 그의 손에 들려있는 가방을 열어볼 수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스태프가 "그 가방 안에 뭐가 들었어요? 감독님?"이라고 물었지만 그는 가방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별 거 아니야"라고만 해 더욱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결국 몇몇 스태프들이 작당을 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007 가방을 열어보고는 배꼽을 잡으면서 웃었다고 한다.
그곳엔 내의 두 벌과 돌돌 만 양말 두켤레 그리고 박카스 여섯병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웃을 사람이 있겠지만, 마흔이 넘어 혼자인 그에게 정말 소중한 물건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문성[영화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