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윤호진의 연극세상 '기업과 문화의 만남'
기사입력 2000년 01월 30일 14시 50분
명성황후 2월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연을 앞두고 이맘 때가 되면 조금씩 피로가 쌓이기 시작한다.
일이 한꺼번에 밀려들기 때문이다. 공연장에 서 있으면 발바닥이 그리 아플 수가 없다. 6년째 해오는 명성황후임에도 리허설때는 항상 조바심을 내며 지켜보게 된다. 공연은 이렇게 극장에서만 조바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준비과정에서 많은 위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공연이 올라가느냐 못 올라가느냐 하는 중대한 관건중 하나가 바로 기업 협찬사를 구하는 일이다. 전화번호부만 펼쳐도 국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기업이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문화 지원이 가능한 기업을 찾는 일이다.
공연 기간이 길지 못하다 보니 대개의 기업은 금액협찬을 하면 홍보 기간이 짧아 효과에 대한 확신이 없어 당연히 지원을 꺼리게 된다. 버리는 돈으로 생각하고 예산을 소비하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장기공연 시스템에 들어가 있는 큰 공연들이 많다보니 연간 협찬 형태가 많다. 뉴욕에 가면 공항에서부터 맨해튼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공연광고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브로드웨이의 롱런 공연 시스템 덕분이다. 또한 공연장에 가도 프로그램 뒷장에는 엔젤이라하여 일정금액을 극장이나 프로덕션에 지원한 명단과 정규 협찬기업의 명단을 볼 수 있다. 기업의 협찬은 대부분 장기공연을 통한 이미지 구축에 중점을 둔다.
물론 이 방법은 장기공연 시스템일 때 검토하고 도입해야 하는 일일테고, 지금 현재 중요한 것은 우리 실정에 맞는 기업과 문화의 만남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려면 우선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 기업이나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의 폭을 넓혀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명성황후는 지난해 10월 예술의전당 공연을 씨티은행과 함께 했다. 씨티은행은 일정한 협찬금을 지원하면서 자사 카드 회원을 초청하여 공연을 관람하게 하고 VIP룸에 다과를 준비해 담소를 즐기는 시간을 마련했다. 특히 주목받았던 것은 은행 고객을 위한 협찬의 범위를 벗어나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즉석 사진촬영과 기념품 행사등을 펼치고 매회 추첨을 통해 관객중 한명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등 극장 전체를 씨티은행이 함께 한다는 확실한 느낌을 심어 주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중국에 갔을 때도 중국인들이 강조하던 말들 중 하나가 관계의 문제다. 물건을 사고파는데는 그 사람이나 국가간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문화의 이해관계에서 사업의 교류가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공연장에 모여드는 문화향유 고객들을 한껏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짐에도 적극적인 움직임에는 약한 편이다. 기업이나 공연단체가 금액지원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효과를 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 적극 활용하고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극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