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92)
기사입력 2000년 01월 12일 15시 08분
독도, 동도
"강하 준비！"
소대장 야마카와 히도시 이등육위가 헬기 출입문을 열며 외쳤다. 헬리콥터 안으로 거센 바람이 몰아쳐 들어왔다. 공정단 자위관들이 로프를 던져 아래로 늘어뜨렸다.
"이봐！ 이제 내리는 거다！"
미야자키 요시히코 육사장이 다나카 히로유키의 어깨를 치며 걸어나갔다. 다나카 이등육사는 대답하려다가 거센 바람에 숨이 막혀 입을 닫았다. 강하준비를 하는 동안 다나카는 어쩔 줄 몰랐다. 아래 쪽에서 총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육사장！ 이제 서로 총을 쏘는 건가요? 죽이는 건가요?"
다나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다른 대원들이 그를 보며 실소를 지었다.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대원들까지 들은 모양이었다. 다나카는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이봐！ 자넨 군인이야. 사라리맨이 아니잖나?"
미야자키 육사장이 도어 끝에 발을 딛은 채 헬기 안쪽을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로프를 잡고 발을 구르자 미야자키가 잠시 공중에 뜬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야자키는 순식간에 아래로 사라졌다. 자위관들이 차례차례 로프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나카의 차례가 돌아왔다. 다나카는 꿀꺽 침을 삼킨 다음 심호흡을 했다. 강하로프가 후크에 제대로 걸려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수십 번 훈련받은 로프 강하는 그에게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땅에 닿는 것이 무서웠다. 다음에 강하할 자위관이 손짓을 하며 다나카를 재촉했다.
-찡！ 찌찡！
"우악！"
총탄이 헬기에 박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자 다나카가 주저앉았다. 그 직후에 공격헬기가 발사하는 육중한 기관포탄 소리가 울렸다. 다나카에게는 둘 다 끔찍한 소리였다.
"빨리 뛰어내리지 않고 뭐하는 거야?"
야마카와 이등육위가 눈을 부라렸다. 소대장이 눈짓하자 다른 자위관들이 몰려들어 다나카를 일으켜 세웠다. 헬기 출입문에 선 다나카가 문틀을 잡고 버텼지만 자위관들이 사정없이 밖으로 던져버렸다.
"우아아악！"
시커먼 땅이 하늘로 치솟는 것처럼 빨리 다가왔다. 다나카는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로프를 잡은 가죽장갑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뚜두두둣！
총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래를 보니 자위관들이 어두운 곳마다 대충 자동으로 갈기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다나카가 다시 브레이크를 걸며 땅에 발을 내딛었다. 겨우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다나카！ 이리로 와서 바짝 붙어！"
미야자키 육사장의 목소리였다. 다나카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잽싸게 뛰어갔다.
"이 정도면 뭐가 남아있겠어?"
미야자키가 툴툴거리며 헬기 착륙장이었던 곳 옆길을 걸었다. 한국이 건설한 임시 착륙장은 포격에 철저히 부서져 있었다. 그렇게 말을 하는 미야자키가 날카로운 눈초리를 빛내며 어둠 속을 샅샅이 살폈다.
다나카는 의외로 어두운 곳을 수색해야 할 일이 아득했다. 잘못하면 수색작전으로 밤을 샐 것 같았다.
"어두운데 야시경은 왜 안 주죠?"
"내 말이 그 말이다. 실탄이 지급된 게 신기할 정도야."
공정단원들은 강습 전에 맡은 지역을 향해 천천히 수색해 들어갔다. 미야자키의 분대가 두 번째로 수색을 맡은 곳은 천연동굴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