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47)
기사입력 1999년 04월 26일 15시 14분
레보스호 선상의 라이온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질풍호의 갑판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았다.질풍호의 갑판원들은 모두 양쪽 배 난간에 바짝 붙어있었다. 그리고 갑판 가운데로 한 선원이 외롭게 이물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길다란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라이온은 피식 웃었다. 질풍호의 선장 트로포스가 마법을 쓸 결심을 한 모양이다. 술에 취했을 때 트로포스는 술주정 삼아 자신이 하이낙스에게서 마법을 배웠느니 어쩌니 떠들었다. 선단의 그 누구도 믿지 않았지만 그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것은 사실이며, 지금 쓰려고 하고 있다.
라이온은 트로포스가 포로로 잡은 마법사에게 마법을 배우고 그의 지팡이를 빼앗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곤 한다. 트로포스라면 그럴 수 있다. 그만큼 그는 겁도 없이, 단순히 호기심만으로 마법을 배울 정도로 무모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트로포스는 지팡이를 짚고 질풍호의 이물에 당당히 섰다. 트로포스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지팡이를 두 손에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곤 나직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때 페가서스호의 선상에 우뚝 서있던 하리야 선장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저놈！ 또 허가없이 마법을 써！ 그 흉측한 흑마법 멈추지 못해！"
하리야는 선단 전체에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기 위해 확성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말 그대로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곧 그의 목소리에 화답한 것은 트로포스가 아니었다. 그랜드파더호의 선장 돌탄의 잔뜩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파문신부！ 흑마법으로부터 우릴 지켜야지? 우리 선단을 위해 기도라도 좀 올려주게나. 커헐헐！"
하리야 선장은 고개를 홱 돌려 그랜드파더호를 바라보았다. 돌탄 선장과 그랜드파더호의 선원들은 한결같이 사나운 미소를 지은 채 하리야 선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리야 선장은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라이온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하리야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말아요. 하리야. 당신이 그런다고 해서 이 막돼먹은 놈들 중 누가 감사라도 할 줄 압니까? 이 놈들은 당신을 더욱 놀릴 뿐이라고요. 젠장, 나도 놀리고 싶어진단 말입니다！' 하지만 하리야는－라이온은 그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라이온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대가 세고 끈기있고 존경할만한 무수한 장점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리야가 노스윈드 선단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바로 저 버릇 때문이다.
고개를 돌린 라이온은 다시 트로포스를 바라보았다. 성공한 모양이었다. 트로포스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두 손에 쥐어진 지팡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진동했고, 트로포스는 안간힘을 다해 그것을 고정시켜 두고 있었다. 그의 눈은 천천히 뒤집혔고, 입가로는 걸죽한 타액이 흘러내렸다.
트로포스는 침방울을 튕기며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선장의 그런 모습을 본 질풍호의 선원들은 모두 하옇게 질린 얼굴로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했다. 그 때 트로포스가 아주 괴상한 목소리로 외쳤다.
"바람아, 불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