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전여옥-신데렐라 구두 유감
기사입력 1999년 04월 08일 14시 17분
IMF이전 아주 멋진 차 한대를 보았다.
그날 함께 점심을 먹은 선배들과 나는 `진짜 잘 빠졌네'하고 감탄을 했다.
한 남자 선배가 `우리 마누라 사주면 좋아하겠네'라고 착한소리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좀 더 현실적(?) 감각을 지닌 선배가 "미쳤어. 다 끝난 마누라한테 사주게. 저런건 애인한테 사주는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우린 다 `와'하고 웃었다.
사실 그 선배들에겐 돈도 애인도 없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400만원짜리 신데렐라 구두가 큰 화제였다.
도대체 400만원이나 주고 살 그 구두는 대체 어떻게 만들었길래 비싼 것인지 사람들은 놀라워 했다.
이 세상엔 돈을 어떻게 쓸까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른바 `지위재'가 있기 마련이어서 나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구두를 누가 누구에게 사줬는가를 듣고는 좀 놀랐다.
들리는 바로는 주로 남편이 자기 부인에게 사줬다는 것이었다.
물론 돈많은 남편이다.
내 생각에는 그런 구두는 돈많은 남자가 자신의 젊은 애인에게 사줬겠거니 했던 속물적(?) 예측은 빗나간 셈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남편이 부인에게 그런 신데렐라 구두를 사줬다는 것이 더더욱 이상한 일로 여겨졌다.
남자의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위가 높으면 높을 수록 부부관계는 불평등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 여성이 어떤 지위나 부를 누린다 하더라도 그 남자가 사라짐으로써, 이혼을 통해서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그 남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IMF에도 여전히 값비싼 물건들은 날개 돋힌 듯 팔린다고 한다.
하다못해 신데렐라 구두까지 없어서 못팔 정도란다.
부인에게 신데렐라 구두를 사주는 남자들은 어쩌면 부인에게 아주 죄를 많이 진 남자들이 아닐까.
배신과 기만과 속임에 대한 대가를 돈으로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값비싼 브랜드, 보석, 모피등 여성을 호사시키는 화장품들은 여성이 낮은 지위, 종속적인 위치를 보여주는 것들이라고 했다.
신데렐라 구두와 신상류층의 과시형 소비의 치어리더가 되는 것이 바로 이땅의 여성들이라는 것은 참으로 슬픈일이다. [방송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