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가위눌림(4)
기사입력 1999년 03월 11일 15시 13분
하지만 소름끼치게도, 긴 속눈썹 밑으로 보이는 눈은 뿌옇게 흐린 물방울들로 이루어진 형상일 따름이었다.
차가운 입술이 귓가에 닿았다. 음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귀를 통해 뇌에까지 번져나갔다.
차가운 그녀의 몸이 내 위에서 스물스물 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짜릿한 공포를 느꼈다.
그녀의 검은자 없는 눈동자가 나의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민영의 차가움 말고 나를 더욱 소름돋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 가슴 답답함은… 그래, 그녀에게는 무게가 있었다.
그녀는 실체였다！
민영의 형상은 차가운 키스를 끝내고 가냘픈 손을 뻗어 나의 목을 잡았다.
그 냉기도 나의 몸을 움츠러들게 했지만, 나를 더욱 공포에 질리게 한 것은 민영의 힘이었다.
그녀의 표정 없는 눈이 마치 즐기듯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만일 그녀에게 검은 눈동자가 있었다면, 그녀의 눈 주위로 드러난 흰자의 크기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역시 하얀 빛깔의 입술이 뒤틀려져서 하얀 혓바닥을 내보이고 있었다.
죽기 싫다！ 죽기 싫다！
나는 살려달라고 고함을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이것이 현실인가, 아니면 가위눌림인가.
나는 판별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녀의 손에 더욱 힘이 가해지고 있었다.
일어나야 해！
빨리 이 죽음과도 같은 가위눌림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나는 가습기 옆의 전화기를 쳐다보았다.
벨이 울리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간절하게 누군가가 전화벨을 울리게 해주기를 빌었다.
내 입술은 말라서 버석거리고 있었다.
민영은 희열을 느끼는지 이제는 쌔액쌔액 하는 거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니다. 이것은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소리일 것이다.
민영은 절정을 예감했는지 입을 크게 벌린 채로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마치 구원과도 같은 벨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나의 가위눌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것은 가위눌림?
아니, 그녀는 실체였다.
그녀의 이 무게감… 차가움….
나는 안타깝게 전화기로 손을 뻗쳤다. 아니 뻗치려했다.
나의 손끝이 바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벨소리는 끊기고 말았다.
'삐' 하고 자동응답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내 위의 민영은 나의 목을 쥔 손에 마지막 힘을 가하는 중이었다.
민영아… 살려줘… 살…려….
"안녕하십니까, 삼성동입니다. 메시지를…."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매우 기쁜 듯한….
"여보, 저예요. 자요? 수술이 끝났어요. 아직은 혼수상태지만, 고비는 넘겼나 봐요."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
"여보！ 민영이는 괜찮대요！ 우리 딸… 민영이는…."
`허억… 그랬지…. 민영이…, 내 딸… 내… 딸….'
내 위에서 그녀가 웃고 있었다. 매우 기쁜 듯이, 그리고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는 그녀의… 손…[이번 회 끝]
글·김문경(아이디:밀랍인형)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