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6)
기사입력 1999년 03월 07일 15시 22분
갑판 아래의 노예장 역시 채찍을 집어들 겨를도 없이 주먹을 휘둘러가며 노예 노잡이들을 다그쳤다. 레보스호의 우측 노들이 거대한 역진을 시작했고, 동시에 좌측 노들이 어지럽게 수면을 가르자 레보스호는 제자리에서 빙글 돌기 시작했다.
엘리엇 선장은 재빨리 다른 두 척의 배를 돌아보았다. 기함의 움직임을 본 다른 배들도 재빨리 똑같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세 척의 배는 이제 완전히 반 바퀴 선회하여 다가오는 해적 함대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좋아！"
엘리엇 선장은 다시 갑판을 돌아보며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무기고 개방！ 전투병은 전투 위치로！ 포수장, 대포 모두 장전！ 후방 대포는 장전되는대로 겨냥할 필요없이 모두 발사！"
전투병들의 발소리가 갑판을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포수들은 재빨리 장전에 들어갔다. 포수장은 엘리엇 선장의 의도를 명쾌하게 이해하고, 모든 포수로 하여금 후방 대포에 우선적으로 달려들도록 명령했다. 놀라운 속도로 장전이 완료되자 포수장은 지체없이 발사를 명령했다.
"발사！"
쾅쾅쾅！ 겨냥도 없이 발사된 포탄들은 모두 제멋대로 날아갔다. 삽시간에 수면 위로 거대한 물기둥들이 치솟아 올랐지만 해적선에 명중하는 포탄은 하나도 없었다. 포격의 사정 거리가 아닌 것이다.
얼핏 보기엔 무모하고 쓸모없는 짓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노련한 뱃사람들의 지혜가 그대로 담겨 있다. 후방으로 발사된 대포는 우선 물기둥과 파도로 적의 추격을 방해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반작용으로 자함에 추진력을 더한다. 대포의 발사 반동이 그대로 배에 전달되는 것이다.
다른 두 척의 배에서도 똑같은 의도로 발사를 시작했다. 그 때문에 해상에서는 거대한 카밀카르 갤리어스 세 척이 용틀임을 하며 연속발사를 시도하는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쾅쾅쾅쾅쾅！ 잠시 동안 포성이 숨쉴 사이도 없이 울려퍼졌고, 치솟아 오른 수십 개의 물기둥들은 수평선을 가려버렸다.
배가 크게 기울어질 때 라스 카밀카르는 덱체어(Deckchair, 갑판용 의자)에서 나가떨어졌다. 라스 법무대신은 아픈 무릎을 움켜쥐고 일어나기는 했지만 졸도할 듯한 공포 외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갑판 위에 난무하는 비명소리와 연달아 울려퍼지는 포성은 늙은 법무대신의 청각을 무자비하게 유린하여 그의 정신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그 때 라스 법무대신의 눈에 승강구로부터 달려나오는 호위대장 슈마허의 모습이 들어왔다.
"슈마허 경！"
손에 든 검집을 절렁거리며 달려온 슈마허를 향해 라스 법무대신은 거의 매달릴 듯한 동작으로 달려갔다. 그 때 슈마허가 외쳤다.
"라스 각하. 왕녀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슈마허의 질문을 받은 라스는 바야흐로 자신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내려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왕녀? 오오, 이런 벼락맞을 늙은이 같으니！ 율리아나 왕녀님！ 왕녀님！"
라스는 비명을 지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당황한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괴성을 지르며 미친듯이 달리는 선원들과 떨어져 내리는 돛, 그리고 치솟아 오르는 물기둥들과 자욱히 피어오르는 포연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라스는 다시 혼란에 빠져버렸다. 기사 슈마허는 그런 법무대신을 내버려 두고 스스로 왕녀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첫번째 임무는 왕녀의 호위였다.
"왕녀님！ 왕녀님！"
그 때 누군가가 슈마허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같이 찾아드릴까요?"
"예. 부탁드립니다…. 왕녀님?"
슈마허는 얼빠진 표정으로 율리아나 왕녀를 바라보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