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32)
기사입력 1998년 05월 06일 14시 14분
"빌어먹을！"
피터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지만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총소리가 격렬해졌다. 공격을 받은 CIA측도 응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코프에 눈을 붙인 이준석은 이쪽을 향해 번쩍이는 섬광을 향해 초점을 맞췄다.
"피터슨！ 웨인이 맞았어！"
무전기를 울리는 목소리가 그에게도 들렸다.
그 순간 이준석은 스코프에 잡힌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검정 마스크를 뒤집어 써서 두 눈만 드러난 얼굴이었다.
"여긴 좌측！ 맥스와 로건이 당했다."
아우성을 치듯이 무전기가 울리자 피터슨이 어금니를 물었다. 기습을 당한 것이다.
눈을 부릅뜬 가네다는 앞쪽에서 번쩍이는 섬광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 갈겼다.
그러나 수적으로는 물론이고 화력도 저쪽이 월등하게 앞서 있어서 이미 이쪽은 세명의 사상자가 났다.
"보스, 곤도가 맞았습니다."
시노하라가 피를 토하듯이 소리쳤다. 해안을 따라 저택의 좌측으로 돌입하기 직전에 놈들로부터 총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놈들은 앞뒤에서 포위하고 있다.
"별채쪽으로！"
가네다가 소리치자 시노하라와 이끼다가 뛰었다. 쓰러진 동료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가네다는 건물쪽에서의 총격이 멈춰져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뒤쪽 화력이 너무 강했다.
함정인지는 모르지만 엄폐물도 변변치못한 저택 좌측에 엎드려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낮은 담장을 넘어 단숨에 별채의 왼쪽 벽에 닿았다.
이쪽은 담장과 정원수 등에 가려져서 한결 나았다.
"보스, 어떻게 할까요?"
허덕이며 묻는 시노하라의 두 눈이 어둠속에서 번들거렸다.
총성은 산발적으로 들려왔는데 이미 우측은 그쳐 있다.
"건물 안에서는 사격해오지 않습니다."
이끼다가 서둘러 권총의 탄창을 갈아 끼우면서 말했다.
이제 놈들은 밖에서만 이쪽을 향하고 쏜다. 가네다가 힐끗 옆쪽의 본채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건물은 불이 환했으나 사람이 있는것 같지는 않았다.
"바다로 해서 이곳을 빠져나간다."
결심한듯 말한 가네다가 소리내어 이를 갈았다.
"이끼다. 네가 앞장을 서라. 뒤는 내가 맡는다."
작전은 실패다. 이미 세명의 전상자를 버려 놓았으므로 내일이면 일본정보국의 자취가 발견될 것이었다.
튕기듯이 일어난 이끼다가 앞장을 섰다. 저택의 뒤쪽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뒤를 시노하라가 30미터쯤의 간격을 두고 따랐고 가네다는 아직 엎드려 있었다.
가네다는 무전기를 들었다.
"모리, 철수한다. 기다려라."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하에게 말한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모리는 무전기의 스위치를 꺼놓은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다시 요란한 총성이 울렸고 가네다는 마악 어둠속으로 잠겨지던 시노하라가 두 손을 휘저으며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시노하라."
저도 모르게 소리치며 반쯤 몸을 일으켜 세웠던 그는 다시 엎드렸다.
전멸이다. 그러자 불현듯 같이 죽고 싶은 욕망이 끓어 올랐다.
몸을 세우고 몇 발짝만 떼면 될것이다. 그러나 이를 악문 그는 엎드린채 옆쪽으로 기었다.
게처럼 기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보고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죽는 것은 그 다음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