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복] 무명생활 결승전 결승타로 '활짝'
기사입력 1998년 04월 07일 16시 03분
지난 89년 순천상고를 졸업하고 해태구단을 찾은 19살의 앳된 소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생의 쓴맛'을 봤다.
"계약금없이 연봉으로 300만원 줄테니 생각있으면 다시 와라."
한마디를 툭 내던지고 뒤로 돌아서는 무정한 구단 관계자를 바라보며 이 소년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방망이 한자루 살 돈이 없어 1군 선배들이 쓰다 버린 것을 얻어 밤낮없이 휘두르기를 벌써 만 9년.
이경복（28）.
해태의 프로 10년생 고참.
하지만 그는 아직도 후배들에게 제대로 큰 소리 한번 못친다.
"야구도 잘 못하는데…."가 이유같지 않은 이유다.
이경복은 홀어머니 김정연씨（62）의 2남4녀 가운데 막내다.
지난 91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뒤부터는 실질적인 가장.
현재 어머니는 지병으로 앓아 누워 있고, 막내 누나 경순씨（31）는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4년째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올해 연봉은 3천600만원.
그동안 수없이 야구 방망이를 팽개칠 생각도 했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쉬워 마음을 고쳐 먹곤 했다.
지금도 이경복은 단체훈련뒤 다른 선수들이 모두 집으로 향하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때 혼자 모교인 광주동신중학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방망이가 아니면 살아 남을 수 없다'란 각오로 땅거미가 질때까지 휘두르던 것이 이제는 하루일과가 돼 버렸다.
이경복은 지난 6일 OB와의 슈퍼토너먼트대회 결승전에서 9회초 결승타 한방으로 MVP에 오른 뒤 몰려드는 친지들의 축하전화에 밤을 꼬박 새웠다.
"야구 잘한 다음에 결혼하려고 했는데, 올해는 꼭 그 꿈을 이뤄야지요."
떠꺼머리 전라도 총각의 소박한 소망이다.
[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