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새바람(5)
기사입력 1998년 03월 25일 15시 22분
블랙은 사파리가 떠나갈 듯 큰 소리로 포효했다.
`이 동네 왕은 나와서 한판 붙자.'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환경에 낯설어 답답했던 블랙이 숨막히는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악을 쓴 것이다.
블랙의 포효에 바우와 킹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상대가 보기보다 허약하다는 물증을 잡았기 때문이다.
싸움에 관한 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바우와 킹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블랙이 허우대만 멀쩡한 `병풍'이라고 판단했다.
`병풍'이란 싸움을 잘하지 못하지만 큰 덩치를 이용해 뒤에서 분위기만 잡는 조직원을 뜻하는 `선수끼리의 전문 용어'다.
진짜 싸움을 잘하는 선수라면 굳이 악을 쓸 필요가 없다.
자기가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하다가 방해하는 세력이 있을 때 쓸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좋은 주먹' 두고 `말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다.
블랙이 정말로 바우나 킹과 맞대결해 이길 자신이 있다면 포효할 게 아니라 뚜벅뚜벅 걸어가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사정없이 팼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블랙은 사파리 복판에 자리를 잡은 뒤 양쪽에 있는 바우파와 킹파를 본 뒤로는 한걸음도 떼지 못한 채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블랙의 한계를 파악한 바우와 킹은 새로 나타난 적에 대해 일단은 마음을 놓았다.
처음에는 블랙에 대한 지나친 경계로 바우와 킹은 서로 제휴하려고 이심전심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블랙의 `깊이'를 안 이상 `적과의 동침'은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2분의 1을 지배하는 `영웅'은 없기 때문이다.
바우와 킹은 블랙에 대한 경계심이 풀리자 새로 입방한 암컷 두마리에 관심을 가졌다.
사파리만 석권한다면 수지 못지 않은 미녀 두마리를 덤으로 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위기가 곧 찬스로 된 셈이다.
바우파와 킹파 조직원들 눈에도 생기가 돌았다.
잘하면 암컷을 불하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