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대세(9)

기사입력 1998년 02월 25일 13시 41분


윤의충이 들어서자 김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택의 내실 안이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종들이 이리저리 뛰었고 저택은 활기에 찼다.

시종들을 물리치고 둘이 남게되자 윤의충이 입을 열었다.

"다음달에 북방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 땅을 밟지 않을 작정이오."

정색한 그가 김영을 바라보았다.

"정착할 때까지 쉴새없이 전장을 옮겨 다녀야 할 것이고 어쩌면 이름도 모르는 산야에 쓰러져 짐승의 먹이가 될수도 있소."

"습기찬 땅에서 노숙을 하고 추위에 떨면서 행군을 할 것이며 말고기도 떨어져 굶주릴지도 모르오."

그러자 잠깐 어두워졌던 김영의 얼굴이 말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천천히 밝아졌다. 그리고는 막 돋아난 오월의 햇살같은 웃음이 얼굴에 번져졌다.

"산야에 쓰러져 시체가 되는것도 무섭지 않고."

그녀는 노래하듯 맑은 목소리를 높였다.

"물속에서 자도 얼음 속을 걷는대도 그리고 굶어 죽어도 좋습니다. 장군께서 옆에만 계셔준다면."

"그대는 본래 야생마같은 낭자였소."

윤의충도 마침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이제 다시 옛날 강화땅의 기질이 되살아나는 것 같구려."

"얼마나 굵고 긴 인연입니까?"

목소리는 밝았지만 김영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저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대륙의 한쪽을 차지하고 유민들을 모아 제국을 세울 것이오."

"북방의 어느쪽 입니까?"

"장정을 넘어 요양성과 그 북쪽의 광활한 대륙이오."

"옛 고구려 땅입니까?"

"그렇소. 그러나 그 위쪽에도 거대한 대륙이 있소."

시종들이 차를 날라왔다. 모두 얼굴에 생기가 났고 기쁜 기색이 완연했다.

다음날 아침 정청에 있는 윤의충에게 만척이 다가와 섰다.

"대도독, 밀사가 왔소이다."

머리를 끄덕인 윤의충이 내실에 들어가 앉았을때 곧 미복 차림의 사내가 문앞에 엎드렸다.

"대도독, 소인은 장군 영포 휘하의 낭장 소창이 올시다."

"영포와 제장들은 무고 하느냐?"

"예. 대도독께서 오실때까지 기병 5만에 보병 5만은 모은다고 했소이다."

"그만하면 됐다."

그동안 여진족 장수들에게 밀사를 보내어 군마를 모으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감숙성 북쪽에는 인적미답의 거대한 영북행성이 있었는데 면적이 중원땅 만큼은 되었다.

그리고 동쪽의 요양성 북쪽으로도 광활한 대륙이 있다.

윤의충은 영북행성의 동쪽 전체와 요양행성을 포함한 동북쪽 대륙에 정착할 계획이었다.

원제국의 서북방을 하이도가 장악한다면 자신은 동북방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하이도는 영북행성 서쪽에 군사를 집결시켜 놓았지만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쿠빌라이가 남송정벌에 전력투구 하는 때여서 그에게는 원제국의 서쪽을 침입할 절호의 기회였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때 수비대장 요문태가 윤의충의 내실로 찾아왔다.

"대도독, 후위총관 방재보가 심복 하겠다는 혈서를 써 왔소이다."

그가 혈서 한장을 내밀었다.

그도 이미 윤의충을 따라 나서기로 한 것이다.

방재보가 혈서를 냈으니 감숙성의 대부분의 한인 장수들은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