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사회] '퓨너럴' 검붉은 형제애
기사입력 1998년 02월 04일 15시 37분
아벨 페라라.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악마적 본성을 충격적으로 묘사, '독특한 폭력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
우리에게는 TV시리즈 '마이아미 바이스'나 마돈나 주연의 영화 '스네이크 아이'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컬트무비에 열광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혹독한 폭력영화의 대부로 추앙받아온 인물이다.
'퓨너럴'(The Funeral)은 90년대의 아벨 페라라를 음미할 수 있는 대표작.
갱스터 무비의 장르를 차용하고 있지만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었던 낭만적 분위기나 남성미를 포장하려는 겉멋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벨 페라라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정신적 혼란의 정서, 지저분하고 어두운 세계에서 싹트는 인간의 폭력성과 강박적인 욕망만이 음울하게 깔려 있을 뿐이다.
1930년 공황기의 뉴욕,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온 이탈리아계 템피오 3형제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첫장면.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흑백영화와 함께 흐르는 빌리 할리데이의 탐미적인 재즈넘버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가 아베 페라라 감독의 음악적 감성을 보여주고, 이를 배경으로 템피오 형제의 막내 자니(빈센트 갈로)의 시신이 집안으로 운구된다.
장남 레이(크리스토퍼 워큰)와 둘째 체즈(크리스 펜)는 자니의 시신 앞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로 오열하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러나 영화는 복수드라마 대신 템피오 3형제의 캐릭터를 드러내는데 주력한다. 비뚤어진 폭력이 잉태된 배경이나 끈끈한 템피오 가족애도 이때 나타난다.
레이는 마피아였던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형제를 보살피는 갱스터로, 체즈는 잠재된 광기를 블루스 음악으로 달래며 살아간다. 막내 자니는 두형의 생존방식과는 달리 공산주의자를 자처하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레이는 자니 살해의 유력한 용의자로 라이벌 조직의 보스인 가스파(베니치오 델 토로)를 지목한다. 자니가 가스파의 사업을 방해했다는 점과 가스파의 아내를 정부로 삼고 있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레이는 가스파를 잡아들인 뒤 부하들에게 살해를 명령한다. 그러나 자니의 살해범이 엉뚱한 곳에서 잡히면서 폼나게 그려질 법한 복수극은 엉망으로 뒤엉키며 파멸로 치닫는다.
압권은 마지막 장면. 자니 살해범의 시신을 묻고 돌아온 체즈가 광기에 사로잡혀 온 집안식구들에게 총질을 해대고, "형제없이 어떻게 살아가나"를 외치며 자신의 입에 총구를 틀어박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못해 혼란스러울 정도.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이라는 걸 아벨 페라라는 이 장면으로 설파한다.
폭력이 잠재된 불안한 영혼을 눈부시게 연기한 베니스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자 크리스 펜을 비롯한 출연배우들 모두가 탁월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놓치면 아쉬울 영화.(7일 코아극장)
[이창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