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남아공 '풀뿌리 축구'
기사입력 1997년 06월 27일 14시 30분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케이프 선 호텔에서 전기 배선공으로 일하고 있는 마크（27）.
그의 전직은 축구선수다. 프로팀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아마에선 케이프타운 스퍼스 등 3개의 명문구단을 거치면서 이름 꽤나 날리던 선수였다.
이런 그에게 유일한 낙（樂）은 매주 화요일마다 벌어지는 호텔대항 축구경기다.
현재 케이프타운에 있는 호텔은 줄잡아 20여개. 이 많은 호텔들이 모두 축구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화요일만 되면 부서 당직자를 남겨놓은 채 유니폼을 입고 푸른 잔디그라운드로 뛰어간다.
`아프리카의 유럽'이라 불릴 정도로 쾌적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덕에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요즘에도 잔디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릇파릇하다.
케이프타운 근교에만 무려 7개의 크고 작은 잔디구장이 있다. 이들은 이런 푸른 잔디위에서 가슴이 터져라 뛰면서 생활의 스트레스와 축구에 대한 애정을 키워 나간다.
다른 직업군에도 이런 축구회가 폭넓게 조직돼 있어 서로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축구발전을 위해 정기적으로 경기를 갖는다고 한다.
남아공 축구 전체 차원으로 보면 이들은 하부구조의 튼튼한 `풀뿌리 축구'를 이어가는 개미군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지지와 성원을 받고 무럭무럭 성장한 남아공 축구는 아프리카의 내로라하는 강호들을 모두 물리치고 지난해 아프리카컵 우승이란 신화를 창조해냈다.
올해엔 98프랑스월드컵 아프리카예선서 3승1무1패를 기록,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같은 쾌거는 바로 마크와 같이 축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많은 국민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3대10으로 참패한 지난 말레이시아청소년축구 브라질전을 보며 분개할 자격이 있었던 것일까.
올 한해 야구장 대신 몇번이나 축구장에 갔고, 한달에 단 하루라도 축구에 관심을 보인적이 있는지….
마크를 보면 자꾸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