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불타는 포항 (6)
기사입력 1997년 06월 19일 14시 31분
이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포항은 그동안 가뭄으로 시달리고 있었는데 때맞춰 단비가 내려 `단비를 몰고온 박태준'으로 불려졌다.
오션파크 호텔.
다른 대형 호텔이 있었지만 박회장은 이 호텔에 여장을 풀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한 박회장은 감개무량한 듯 출구를 향해 한번 시선을 꽂은 후 걷기 시작했다.
이로써 오랜 외유생활을 마치고 영구 귀국하게 되며 정치재개를 선언한 셈이다.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시커먼 눈썹에 꽉 다문 한일자 입술이 인상적 이지만 이 날은 그 유명한 모자를 쓰지 않았다.
최재욱 전 비서실장과 전 포철 임직원들의 영접, 기자들의 플래시가 요란을 떨었다.
"정식으로 출마하시는 겁니까?"
"대선정국을 어떻게 보십니까."
"어느 정당으로 출마하실 작정이십니까."
하지만 박회장은 웃기만 했다.
"포항에서 봅시다."
"포항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측근들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 올랐다. 그리고 자신에 넘친 듯 기자들을 향해 번쩍 한손을 들어 올렸다. 그뿐, 그를 태운 승용차는 포항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포항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인구 5만명의 보잘 것없는 어촌이 지금은 100만 인구를 바라보는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상가가 흥청이고 많은 사람들이 취직했다. 포철과 포항은 바로 하나며 그 연결고리는 바로 `박태준'이다. 포항의 희망이며 상징인 박태준이 돌아온다.
그가 숙소로 정한 오션파크에는 노란색 정복을 입은 20여명의 모범택시 기사와 제복을 입은 포철직원이 도열한 채 `박태준！ 박태준！'을 연호하고 있었다. 온 도시가 `박태준'과 `선거'열풍에 휩싸였다.
"박회장이 있을 때는 장사도 잘됐는데…."
"어머님 제사에도 못왔다며?"
기대와 동정론이 온 도시를 들끓게 했고, 여론은 박회장에게로 몰려갔다.
이종민은 그들 틈속에 묻혀 있었다. 그리고 머리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열기는 어느 순간 브레이크가 걸릴 지도 모른다. 선거의 백전노장 이기택 총재가 어떻게 틈새를 파고들 지 모른다.'
이미 오늘을 예견한 이종민 기자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일방적 게임에서 백중세로 돌입할 것이다.
`혹시 여당에서 박회장 낙선을 위해 음성적 지원은 없을까? 야당이 모두 박회장을 지원한다면 여당이 이총재를 지원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이기택의 등장보다는 박태준의 등장이 더 부담스러울 테니까…. 하지만 신한국당도 지금 코가 석자인데 설마 이총재 지원까지 하려고?'
비가 부슬대며 내리는 가운데 박회장을 기다리는 이기자의 머리는 복잡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