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보기] '떴다봐라 박찬호,내려다보니선동열'
기사입력 1997년 06월 16일 14시 17분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지난 20년대 일제의 압박과 설움으로 찌든 조선 백성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가사의 일부다.
일본항공학교 출신인 안창남은 1922년 조선인 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조선하늘을 난 사람이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안창남이 동경의 대상이 됐음은 물론이다.
또 전설적인 사이클선수인 엄복동은 사이클경기에서 일본선수들에게 백전백승을 거둔 조선인들의 영웅이었다.
하늘의 안창남과 땅의 엄복동은 조선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그들은 암울했던 시절 조선인들의 꿈과 희망이었다.
요즘 그들의 후손들은 70여년전 유행했던 구전 노래의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있다.
97년을 살고 있는 국민들은 모두 불안하다.
전직 대통령들이 실형을 살고 있고, 현직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가 비리 혐의로 구속된 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여기에 대통령선거에 뛰어들 후보들의 권모술수 경쟁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고, 한보사태의 여파로 경제가 휘청거려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한총련의 분탕질과 함께 질서마저 어지러운 총체적 어려움에 빠져 있는 요즘 우리 가슴속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불안 공포 초조를 떨쳐버리고 속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청량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박찬호와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 선동열의 눈부신 활약이다.
언제부턴가 박찬호와 선동열은 우리 가슴속에 꿈과 희망으로 자리잡았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우리보다 나은 미국과 일본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박찬호와 선동열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었다.
박찬호는 아직까지 덜 여문 선수여서 좀더 훈련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여론수렴을 거쳐 `국보급 투수'로 공증을 받고 작년 일본에 건너간 선동열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우리의 자존심 선동열이 동네북 신세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올시즌 우리의 생각과는 엄청나게 다른 선수가 되어 나타났다.
선발투수 진입을 기적적으로 일군 박찬호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뿌듯함 그 자체다.
1m87의 당당한 모습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평균 이상인 체구는 자랑스러울 뿐아니라 타자의 방망이를 부숴버리겠다는 각오로 던지는 시속 150㎞대의 광속구 또한 우리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 요인이다.
더구나 박찬호는 `한－흑 갈등'을 비롯한 각종 불평등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180만 재미동포의 머릿속에는 `야구 우상'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들에게 박찬호는 신앙일 정도다.
올시즌 5승3패를 달리고 있는 박찬호의 현재 구위로는 적어도 15승을 할 수 있으리라는 현지 보도도 우리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소식이다.
일본의 선동열도 국민들의 기대에 확실히 보답하고 있다.
작년은 일본야구를 깔보고 훈련을 덜해 기대만큼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올시즌에는 일본에서도 최고의 투수로 잘나가고 있다.
70만 재일동포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선동열은 19세이브로 이 부문 단독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그들마저 없었다면 우리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 장단에 맞춰 노래하며 근심을 잊자.
`떴다 이겼다 박찬호의 강속구, 나갔다 지켰다 선동열의 변화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