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32)

기사입력 1997년 06월 01일 15시 59분


배중손의 선단이 도착한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이미 포구가 완성된 오덕도에 닻을 내린 세척의 배에는 쌀 일천석과 대량의 은（銀）이 실려있었다.

김기천이 도자기와 바꾼것이다. 오덕도의 군영으로 들어선 배중손은 활기에 차 있었다.

"장군, 왜국을 서너번만 다녀오면 거금을 모을 수가 있겠소이다."

윤의충의 앞에선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고려 도자기는 같은 무게의 금과 바꿨습니다."

그는 구주의 히고까지 다녀온 것이다. 군영 안으로 부사 김기천이 아스다를 데리고 들어섰다.

아스다는 히고의 영주 기쿠치 휘하 무사로 이번 뱃길에 안내를 맡았다. 윤의충의 앞에 무릎을 꿇은 아스다가 두손으로 봉서를 올렸다.

"장군, 저의 주군께서 보낸 서신이옵니다."

그러자 왜인처럼 보이는 사내 둘이서 커다란 나무상자를 들고오더니 앞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주군께서 장군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윤의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열흘전에 나주에 왜선 두척이 들어와 고려인 셋을 죽이고 여섯을 잡아갔다. 누구 소행인지 아느냐?"

"어쨌든 네 주군께 고맙다고 전해라. 나도 선물을 준비할 터인즉 그동안 쉬도록 해라."

"감사하옵니다. 장군."

오덕도는 활기에 찼다.

군영의 군사들이 모두 나와 배에 실린 쌀섬을 날랐는데 천석이면 이천명의 석달 식량은 되는것이다. 진주목의 창고에도 이만한 쌀은 없다.

바닷가를 내려다 보고 선 윤의충의 옆으로 김기천이 다가와 섰다.

"장군, 히고 영주 기쿠치는 계속해서 상선을 띄우고 싶어합니다. 곧 왜선 세척을 이곳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서신을 보았소."

"왜국은 태평성대라 들（田）이 잘 닦여졌고 왜인들의 몸에는 살집이 붙었소이다. 소국（小國）영주인 기쿠치의 성이 진주성보다 컸습니다."

윤의충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기쿠치는 가마쿠라 막부 휘하의 영주였으나 영지를 통치하는 군주이다. 그는 한달에 두번씩 상선을 띄우자는 제의를 해온 것이다.

태평성대에 기여한것은 고려국이다. 고려가 30여년 몽골의 침탈을 받는 동안 바다 건너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는 급속히 발전한 것이다.

윤의충이 진주성 내의 목사관을 나왔을때는 유시무렵이었다.

목사께 배가 닿은 것도 알릴겸 기쿠치가 보낸 선물중에서 비단 다섯필을 드리고 나온 것이다.

방호사 관저에 들어선 윤의충을 보자 박오돌이 서둘러 다가왔다. 그는 이제 방호사 관저의 집사 노릇을 한다.

"방호사어른, 시중대감댁에서 사람이 왔소이다."

그가 소리죽여 말했다.

"위사장 한단장군이 보낸 사람이라고 합니다."

윤의충이 내실에 들어가 앉았을때 교위 복색을 한 장교가 들어섰다.

"한단장군 휘하의 교위 조평 문안이오. 엎드린 그가 머리를 들었다. 20대 후반의 건장한 사내였는데 온몸이 먼지 투성이다."

"장군, 내실 아씨가 나흘전에 실종되었소이다."

그가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실종되기 이틀전에 별장 만척을 불러 이곳 위치를 물으셨다 하옵니다. 위사장께서 급히 이 일을 알리라 하셔서 이틀 밤낮으로 달려 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