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그들만의 리그 (4)
기사입력 1997년 04월 11일 14시 31분
어린이대공원에서 온 시커먼스는 덩치가 작아 애당초 맘모스나 곰보살처럼 대권에 도전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어지낼 성격도 아니었다. 큰 곰들은 아직 상대를 몰라 싸움을 거는 대신 힘자랑을 하며 기선 제압에 나섰지만 시커먼스는 사파리를 돌아다니며 지형지물을 익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암컷처럼 수줍움이 많은 색시와 맞닥뜨렸다. 에버랜드 출신의 색시는 이름에서 풍기듯 다른 수곰과 전혀 달랐다. 덩치는 비슷했지만 싸움꾼 시커먼스와는 애당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시커먼스는 지나는 길에 아무 생각없이 색시와 부딪쳤다. 한데 반응이 이상했다. 다른 곰 같으면 별다른 반응이 없었겠지만 색시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시커먼스는 야생동물 특유의 기질이 발동했다. 사자나 호랑이도 그렇지만 곰 역시 자기보다 약한 놈을 보면 해코지를 하는 습관이 있다. 시커먼스는 색시가 놀라는 모습을 보자 대뜸 앞발로 뺨을 후려치더니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색시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사파리의 보안관 패트롤카가 즉각 출동했다. 개장 첫날인 만큼 곰들의 싸움에 대비해 비상경계를 한 만큼 다른 때보다 출동시간이 훨씬 빨랐던 것이다. 사육사들은 시커먼스가 패트롤카의 위력을 모르는 만큼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들이받을 듯이 밀어닥치는 패트롤카를 피해 시커먼스가 도망가는 모습을 본 사육사들은 아예 버릇을 고치기 위해 끝까지 추격했다. 사육사들이 시커먼스를 쫓는 사이 또다른 사고가 터졌다. 맘모스와 곰보살이 뒤엉킨 것이다. 에버랜드에서 왕 노릇을 하던 맘모스는 사파리로 무대가 바뀐 뒤에도 여전히 기득권을 잡기 위해 바위를 흔드는 등 무력 시위를 하던 터였다. 맘모스의 힘을 아는 에버랜드 출신 곰들은 감히 맘모스에게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다른 동물원에서 옮겨온 곰이었다. `전주파' 곰보살과 서울대공원 출신의 공원은 나름대로 자기네 동네에서 왕노릇을 하던 터였다. 무대가 에버랜드로 바뀌었다고 해서 결코 기가 죽을 놈들이 아니었다. 특히 곰보살은 소규모 지방동물원에서 살다가 4천평이 넘는 사파리를 보고는 반드시 왕이 되겠다는 투지에 불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