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적과의 동침 (19)
기사입력 1997년 02월 28일 16시 25분
5살짜리 암호랑이 유리와 4살바이 수사자 천하의 짝짓기는 `사건'이었다. 호랑이끼리 생활을 할 때부터 거의 모든 호랑이와 관계를 맺으며 수많은 염문을 뿌려온 유리는 천하와 데이트를 한 뒤 그의 젊고 색다른 맛에 홀딱 반했다. 천하 역시 처음 보는 적의 종족을 정복했다는 만족감과 어차피 암사자가 절대 부족한 사파리에서 성적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배출구를 찾았다는 점에서 유리와 계속 만났다. 천하와 유리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사파리 커플'로 인정을 받게 되자 짝이 없는 다른 수사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암호랑이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호걸 등 수호랑이들은 여전히 사자의 집단폭행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먼발치에서 암호랑이들이 자의 또는 타의로 수사자와 놀아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바빠진 것은 사육사들이었다. 좁은 철창 안에서 수사자와 암호랑이가 둘이서만 사는 경우 임신을 하는 일은 가끔 있어도 자연 방사된 상태에서는 당연히 처음 있는 일이다. 만약 `라이거'가 태어난다면 동물원으로서는 개장 이후 최대 경사를 맞게 되는 셈이다. 사육사들은 천하－유리 커플이 더욱 가깝게 살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 특히 아파트에 넣을 때도 이들만은 반드시 같은 방에 들도록 했다. 사자와 호랑이는 야생동물이어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좁은 방에서는 짝짓기를 하지 않지만 될 수 있는 대로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 동질감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천하와 유리는 사파리에서 하루 종일 붙어지내다가 나란히 아파트로 퇴근하는 `부부'가 됐다. 동물원에서는 희귀 동물이 아닌 사자와 호랑이에게 `피임'을 시키고 있다. 방치를 하면 암놈이 발정기 때마다 임신을 하고 한번에 1~5마리씩 새끼를 낳게 돼 늘어나는 사자와 호랑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에 있는 동물원에 기증을 하기도 하지만 1년에 수십 마리가 `과잉공급'되는 사태가 생기게 마련이다. 사육사들은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종자가 좋은 수놈을 빼고는 대부분의 수놈을 거세시킨다. 또 암놈들은 발정기가 되면 수놈을 만나지 못하도록 사파리에 출근시키지 않고, 아파트에 가둬 임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