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운명(運命)의 장(章)(45)
기사입력 1996년 05월 08일 19시 32분
퍽 하는 음향이 강문호의 정수리에서 터져 나왔다. 목엽은 상대방이 그토록 쉽게 당해주리라고는 믿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공력이 또 그렇게 무기력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강문호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양 손이 목엽의 옆구리를 깊숙이 파고 들었을 뿐.
"우욱."
저절로 토해진 비명.
실혼인 강문호의 다섯 손가락이 그대로 살을 파고들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번쩍 허공으로 쳐들었다.
공중에 들어 올려진 목엽.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하며 이빨이 그냥 아래 위로 딱딱 마주쳤다. 하늘은 온통 하얗게 쏟아지고 있었다.
동방산장의 비극이 목엽의 뇌리를 스쳐 가는건 죽음의 절망 때문이었을까?
바둥거리며 금강실혼인 강문호를 내리 쳤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점차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강문호는 그저 회색의 눈빛으로 목엽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때 어디선가 아주 나직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를 내려놔."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그 명령은 효력이 있었다.
실혼인은 목엽을 떨어 뜨렸다.
피가 양 옆구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목엽은 몸을 움추리며 쏟아지는 피를 간신히 막았다.
목엽은 그 상태로 걸었다.
만취한 주정뱅이가 걸어가 듯 매우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장면이었다. 목엽은 가물 거리는 의식속에서도 회색동공의
사내를 제지한 사람의 음성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왕자궁의 정문에 도달 했을 때 비로소 그는 명령을 내렸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생각해 냈다.
왕녀 아비라!
그녀는 지금 실혼인 강문호와 함께 멀리서 목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후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를 왜 살렸을까?'
어쩌면 평생을 두고 그 일을 후회하는 한을 남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때 목엽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왕자궁의 정문을 밀었다. 놀랍게도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문턱을 넘으며
목엽은 고꾸라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바둥거렸다.
"뉘신가?"
음성은 정중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흐릿한 목엽의 동공에 기품이 넘치는 귀공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목엽은 완전히 핏물로 범벅이 된 제왕의 도를 내밀었다. 아니, 그것은 동방의 나라에 영원히 계승되어야 할 혼(魂)이었다.
무현왕자의 부르짖음이 아득하게 울려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