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영대표팀 '벌레와전쟁'서 건진 금메달
기사입력 1996년 04월 20일 14시 25분
"아무래도 바퀴벌레를 먹은 것 같은데…." "난 적어도 개미를 100마리는 삼켰나봐."
제5회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던 지난 15일 후아막 옥외수영장.
경기를 마치고 풀밖으로 나온 한국선수들은 구역질을 할듯 "웩웩"거리고 있었다.
심한 운동을 하면 구역질이 날 수 있지만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주최측이 섭씨 40도에 달하는 한낮의 폭염을 피해 밤중에 라이트를 밝히고 결선을 치르게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수영장의 불빛을 보고 날아든 수많은 날벌레들. 날개달린 개미를 비롯해 풍뎅이 나방 바퀴벌레 등 갖가지 곤충들은 곧 수영장 수면을 가득히 뒤덮었다.
수면위로 코와 입을 내밀고 호흡을 해야하는 선수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들을 삼켜야했음은 물론이다.
열대지방 벌레들은 유난히 컸다. 완두콩만한 푸른풍뎅이, 참새만한 나방웩…. 어떤 바퀴벌레는 엄지손가락만했다.
배영선수는 한마리도 먹지 않고 경기를 마쳤으나 자유형 평영 접영선수들은 심각했다.
특히 평영과 접영은 스트로크마다 입을 벌린채 얼굴을 수면에 처박아야하는 영법의 특성상 포식(?)을 할수밖에.
수영장이 `물 반, 벌레 반'이 되자 주최측은 잠시 경기를 중지시키고 뜰채로 걷어내보았으나 워낙 숫자가 많은데다 끊임없이 빠져들어 별무효과.
특히 여자선수들은 출발대에 서서 눈앞에 가득 펼쳐진 `벌레들의 바다'를 보고는 몸서리를 쳤다.
이런데 익숙지 않은 한국과 선수들의 벌레공포증은 잠시 후 익사한 벌레를 먹기 위해 날아든 박쥐떼가 수면위를 저공비행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을 비롯해 중국 선수들은 벌레가 입에 들어가도, 수영복 사이를 비집고 다녀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워낙 이같은 환경에 단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이날 남자 자유형 400m 에서 대회 단 하나의 금메달을 건진 것은 `벌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