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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철 농사·생업도 제쳐놓고 한마음·한뜻…"고향을 돕자"
29일 오전 10시께, 경북 의성군 사곡면 신감리.
이곳에서 만난 마을 주민 10여 명은 1인용 생수병에 물을 담고, 배낭형 분무기를 짊어지고 황급히 야산으로 올랐다.
좁은 농로로 소방펌프차 진입이 어려운 신감리와 소감리 일대 야산에는 사곡면 육군 제50보병사단, 의성군청, 소방 당국 등 관계자들과 주민들 80여명이 일일이 손으로 물을 받아 올라가 잔불을 진압했다.
등산로가 없는 야산을 30분여 기어가다시피 올라간 산비탈에서는 더 이상 빨간 불씨는 보이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새까만 잿가루들이 날리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메케한 연기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제가 수북이 쌓인 산은 조금만 발걸음을 옮겨도 먼지가 풀풀 날려 눈이 시큰거리고 목이 칼칼해졌다.
머리 위로는 연신 산불 진화 헬기가 날아다니는 가운데, 대원들은 연기가 나는 땅에 물을 뿌리고 갈퀴로 연신 땅속 가연물을 찾아 제거하고, 발로 밟으며 재발화를 막는 모습이었다.
산 중턱에서 만난 사곡면사무소 박승홍(55) 계장은 "새벽 6시에 산 위로 연기가 나 바로 올라왔다"며 "군 직원 26명과 군대, 야산 전체에 분산해 잔불을 정리하고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계장은 "산불이 사곡면을 넘어가면 옥산면을 거쳐 바로 안동 길안면, 청송군으로 확산하기 때문에 최대한 잔불을 끄고 연기를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북동부 5개 시·군을 집어삼킨 이번 산불은 산불영향 구역(산불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만 전날 기준 4만5천157㏊로 집계돼 역대 최대 피해를 기록했다.
이중 의성지역 피해는 1만2천821ha로 총 화선은 277km에 달한다.
사나흘째 이어진 진화작업으로 소방·행정 당국 대원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도 생업마저 포기하고 연일 산불 진화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김상원(69·신감리) 씨는 "지금은 농사보다 산불을 막는 게 우선"이라며 "불이 없어 보여도 부엽토 속에 불씨들이 살아있다. 솎아내고 솎아내도 또다시 연기가 풀풀 난다"고 말했다.
대구 달서구에서 고향을 찾아 연일 잔불을 잡고 있다는 김구한(60) 씨는 "3일전 쯤 산 중턱에서 잔불 정리를 하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며 등 뒤로 불이 삽시간에 번졌다"며 "여전히 바람이 세서 어디든지 다시 재발화할 우려가 항상 있다"고 밝혔다.
앞서 산림청은 지난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4개 시·군으로 확산한 뒤 약 150시간 만인 28일 오후 5시를 기해 주불 진화를 마쳤다고 밝혔다.
주불 진화 선언 하루만인 이날 오전 안동 남후면과 의성 신평면·사곡면 일대에서 산불이 다시 일어나고 잔불이 붙을 기미가 보이자 당국은 헬기 20대와 가용인력을 투입해 산불 확산 저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coole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