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살면서 최소 한 번 이상 방문한 곳이 제주다. 주위만 둘러봐도 십여 차례 이상 제주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대다수다. 얼마나 많이 다녀왔는지 주요 관광지와 맛집을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 여행을 넘어 '한 달 살기'·'일 년 살기'까지 해봤다며 자신만의 명소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사람도 있을 정도. 그런데 튀어나오는 여행지는 주요 관광지, 인기 있는 맛집이 대부분이다. 숨은 명소라고 목청을 높인 곳들은 인기가 시들해져 잊혔던 관광지가 고작이다. 아무리 복고, 레트로가 좋다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곳까지 가봐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뻔한 제주 여행이 싫은 사람을 위해 준비했다. 사진만 찍고 오는 여행이 아닌, 현지인과 함께 부대끼며 보고, 먹고, 즐기는 게 가능한 진짜 제주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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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해설사' 아는 만큼 보인다
제주 여행을 할 때면 항상 아쉬웠던 점 하나. 현지인처럼 제주를 느끼고, 즐기기 위해 먼 길을 떠났지만 '바다를 보고, 흑돼지를 먹었다'는 게 기억 속의 전부라는 것이다. 길가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도 사연을 품고 있을 법한데 어디 물어볼 곳이 없다.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 매번 찾는 관광지라고 해도 낯설다. 겨울철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도 어렵다. 겨울철 지천으로 널린 귤밭에서 귤 하나 남몰래 따먹는 것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요령 없이 귤을 따면 '딱' 표가 난다. 제주 현지인들은 겨울철 비싼 방어보다 부시리를 저렴하게 즐긴다거나, 동백기름을 회 기름장으로도 활용한다. 직접 체험 없이는 알 수 없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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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수령의 나무가 많고,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느니 발길 닿는 곳 모두 인생샷의 성지다. 신흥2리의 동백마을 역사는 300년이 넘는다. 지역 주민들은 2011년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된 이후 크고 작은 활동을 통해 건강한 동백마을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마을조직인 동백고장보전연구회를 만들어 운영하는 게 대표적이다. 비영리사단법인으로 마을 어르신이 주워오는 동백씨앗을 활용해 동백기름을 생산한다. 사업으로 얻은 이익은 마을에 환원하거나 동백나무 숲 조성 및 주민 사업에 활용한다. 동백고장보전연구회는 수익을 목표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돈 욕심보다는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다. 그것도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오동정 동백고장보전연구회장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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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파스타 만들기, 동백음식 체험, 동백비누 만들기 등으로 동백마을 방문자 센터에서 진행된다. 다만 최근 동백마을 방문자 센터 내 숙박 시설 보수 등의 공사로 인해 동백마을방앗간에서 직접 체험했다. 체험은 모두 동백기름을 활용하는 체험 위주로 구성됐다. 각각의 체험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고 싶지만, 알고 가면 흥미가 떨어질 수 있으니 비밀에 붙인다. 결론만 말하면 맛있고, 맛있고, 좋다. 동백마을의 미녀 최혜연 동백고장보전연구회 사무국장의 말만 잘 듣고 따라 하면 그럴싸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보장한다. 최 사무국장은 미모만큼이나 까칠해 보이지만 정이 많은 사람이다. 체험시 궁금하거나 모르는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자. 동백기름을 짜는 방법부터 효능까지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다.
"동백기름은 올리브오일과 같은 올레인산(오메가9)의 함유율이 80%에 달한다. 올리브오일(65%)보다 많다. 올레인산은 고지혈증과 고혈압 예방에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생동백기름은 아토피를 비롯해 피부 미용에도 효과적이다. 식용 동백기름은 로스팅에 방법에 따라 은은한 맛과 진한 맛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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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체험 활동 중 주변을 기웃거리며 최 사무국장과 투덕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오동정 동백고장보전연구회장이다. 오정동 회장 역시 정이 많고, 사람을 좋아한다. 술을 좋아하니 나이대가 비슷하고, 대화가 통한다면 저녁에 함께 술잔을 기울일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낯선 현지 사람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동백 관련 체험을 마쳤다면 땅을 보고 걷는 자신을 만난다. 그렇게 걸었던 길에서 보지 못했던 동백씨앗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백마을에는 정원집을 비롯해 크고 작은 숙박시설이 있다.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인상적이다. 마을 인근에는 흑돼지와 푸른콩된장찌개를 파는 맛집도 있으니 제주의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현지인이 주로 찾는 곳으로 푸짐한 쌈채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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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체왓숲길은 동백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머체(돌)로 이뤄진 왓(밭)이라는 뜻으로 머체왓숲길과 머체왓소룡콧길에서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트래킹을 시작하기 전 탁 트인 초원에서 말이 풀을 뜯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강아지처럼 고철희 머체왓숲길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따른다. 머체왓숲길은 트래킹 구간이 길지 않다. 조급해하거나 서두를 필요 없이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면 된다. 짧지만 화산 지형 특성상 볼거리도 많고, 해먹이나 숲속 요가 등 체험거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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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숲길 한켠에 어울리지 않는 게 투박한 작은 건물도 만난다. 역사적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의미 있는 건물이다. 민간 중심의 산불감시 초소다. 지역 주민의 노력이 지금의 머체왓숲길을 만들었다. 가을과 겨울 머체왓숲길을 찾는다면 잣밤(잿밤)을 주워보는 것도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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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계획도 귀찮아" 귀차니즘족을 위한 제주 여행 팁
진짜 제주에서 제주스러운 여행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제주관광공사의 '카름스테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카름스테이는 제주의 작은 마을, 동네를 뜻하는카름과 머무르다는 뜻의 스테이를 결합한 제주 마을여행 통합브랜드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체류형 콘텐츠 개발,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만들기 위해 기획됐다. 제주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로망인 일 년 살기, 한 달 살기를 줄여 놓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카름스테이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지역 주민이라는 인적 자원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역관광 경쟁력 마련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제주관광공사는 동부권 동카름, 서부권 서카름, 남부권 알가름, 북부권 웃가름을 비롯해 세화·저지·신창·수산마을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지역부터 하나씩 둘러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제주의 숨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