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30일 법원 결정을 앞두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운명에 대해 업계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일찍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을 놓고 대립하는 KCGI(강성부펀드)는 산업은행(이하 산은)에 배정하는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의에 반발하며 서울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산은과 대한항공은 항공업 붕괴를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맞서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투입되는 혈세를 줄이고, 고용유지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법원 판단 첫 고비…"합병 외 다른 대안 없어"
그러나 양사의 통합계획이 발표 되자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선 특혜가 아니냐고 반발했다. 대한항공이 자기자본 투입 없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형태를 지적한 것. 한진칼 경영권 분쟁의 한 축인 KCGI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11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한진칼이 산은에 3자 배정하기로 한 보통주식의 신주발행을 금지해 달다는 게 골자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 질 경우 사실상 양사 통합은 불가능해진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과정과 관련한 논란은 복잡해 보이지만 크게 보면 M&A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의 입장 차이에서 출발한다.
특혜론 등을 앞세운 반대 입장은 인수합병 없이도 아시아나항공의 생존 자구책 마련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KCGI는 3자 배정 유상증자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합병이 무산된다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가처분 인용 이후 실제로 거래가 무산된다면 다른 가능한 대안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주장한다. 한진칼이 유상증자를 강행한다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3자배정 보다는 기존 대주주인 우리 주주연합이 책임경영의 차원에서 우선 참여하겠다고 밝혀왔다는 것이다. 특히 1년 반 이상을 준비하고 실사한 현대산업개발도 검증하지 못한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을 합리적인 실사나 정당한 절차도 밟지 않고 국책은행이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떠넘길 경우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행렬이 이어질 수 있고, 소액투자자의 피해만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내세웠다.
그러나 산은과 대한항공의 입장은 다르다. 아시아나항공 생존을 위해 M&A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아시아나항공에 자본 확충이 되지 않을 경우 자본잠식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에 이어 면허 취소까지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번 인수는 단순한 외형 확대가 아닌 국내 항공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생존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을 산은이 계속 떠안을 경우 막대한 혈세가 투입, 결국 고용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협력업체의 종사 인원은 10만여명으로 알려졌다. 인수가 무산될 경우 이들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산은과 대한항공의 논리다. 8000억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아시아나항공 투입 혈세를 줄이고, 고용유지를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인수와 함께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해 자회사의 직원에 대한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세간의 관심이 모였던 만큼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실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대한항공은 창립 이래 51년간 단 한 번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기업 중 하나다.
대한항공은 KCGI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이 코로나19로 심각한 존폐 위기에 직면한 국적 항공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뤄진 산업 구조재편이라는 흐름에 역행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KCGI는 자신들의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투자자들의 돈으로 사적 이익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사모펀드'일 뿐"이라며 "코로나19로 회사가 존폐의 위기에 몰려 있을 때 아무런 희생이나 고통분담 노력도 없다가, 항공산업의 생존을 위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KCGI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은 지극히 무책임한 행태"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는 점에서 자신들이 주주인 한진칼이 자회사인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는 걸 반대한다는 의미는 결국 회사의 이익과 발전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다는 걸 방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영관련 수많은 조건…'특혜' 보다 '족쇄'
항공업계 관련자들은 대한항공과 산은의 입장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에 따른 항공산업의 위기는 심각한 상황에서 통합 자체는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평가다. 대한항공 전직임원회는 19일 성명을 통해 "경쟁 심화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전 세계 항공사는 존폐 기로에 서 있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 없이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국적항공사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그러나 오히려 항공업 구조 재편의 골든타임으로 삼아 국가 항공산업의 지속성장 기반을 마련함은 물론, 양대 항공사 존속 대비 공적자금의 투입 규모를 최소화해 국민의 부담도 경감시킬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한항공 특혜론도 사실 여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자본이 거의 투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따른 외형적 성장만 놓고 보면 특혜라고 할 수 있지만 견제장치가 견고하다. 특혜라고 보기엔 경영 관련 족쇄에 가깝다.
산은과 대한항공의 투자합의서에는 한진칼이 지켜야 할 7대 의무 조항이 명시됐다. 의무조항에는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및 운영 책임과 경영평가위원회가 대한항공에 경영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감독할 책임이 포함됐다. 한진칼 및 주요 계열사 경영진의 윤리경영을 위해 위원회가 설치되고, 조현민 한진칼 전무,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등 오너 일가는 항공 관련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경영성과가 미흡할 때는 경영진 교체나 해임 등도 계획하고 있다. 산은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 및 감사위원회 위원 등 선임과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협의권 및 동의권 준수 등도 의무 조항에 담겼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외형확대를 위한 자의적 결정이기보다는 항공산업 생존을 위한 대승적 차원의 선택에 가까운 게 사실"이라며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보다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에 투입되는 혈세를 최소화 하는 동시에 고용문제 해결 및 경영간섭 등의 상황만 놓고 보면 특혜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대규모 정부의 정책자금이 수반되는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시급함과 중요성을 무겁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이 어떠한 생태계를 구축해 '생존'할 수 있을지, 이를 통해 포스트코로나 이후 세계 항공업계를 주도할 수 있을지에만 집중하고 10만여명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통합 과정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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