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0월 뚝섬경마장에서의 일이다. 경주 도중 선두로 달리던 비슬산이라는 말이 결승선 100여m를 남겨놓고 갑자기 장애물 비월을 하듯 펜스를 뛰어넘었다.
그러다 뒷다리가 철책에 걸려 등에 타고 있던 서대원 기수와 함께 나뒹구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 기수는 즉시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고 비슬산은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날 줄 몰랐다. 5분 가량 꼼짝을 않더니 몸을 푸르르 떨다 사지를 축 늘어뜨렸다.
동물이 숨질 때 몸을 한번 떤 뒤 축 늘어지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마나운서 감모씨(당시 41)도 그렇게 판단하고 경마장과 각 장외발매소에서 궁금해 하는 경마팬들을 위해 안내방송을 했다. 사고가 나면 뭔가 멘트를 해야 하는게 마나운서의 임무이다.
"불의의 사고로 비슬산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기수는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만 깊은 상처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비슬산이 잠에서 깬 듯 부스스 일어나더니 마구간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어서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서 기수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감씨는 너무다 당황스러웠다. 결과가 기껏 생각해서 한 멘트와 정반대로 나타났으니. 더군다나 기수가 사망하는 큰 사고였기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어쩌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서 기수의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정정 방송을 했다. 그리고 윗선에 불려가 호된 꾸지람은 물론 징계까지 받아야 했다. 이래서 마나운서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생긴 모양이다. <전 스포츠조선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