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약속했던 통신료 인하에 대한 논쟁으로 최근 이동통신업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통사의 통신료 인하 거부 명분은 '기본료 폐지를 골자로 한 통신비 인하가 기업 생존권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이동통신 가입자수는 6100만명 가량이다. 모든 가입자를 대상으로 받고 있는 1만1000원의 기본료를 폐지할 경우 통신사는 단순 수치상 연간 8조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통3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3조6000억원이란 점을 감안했을 때 기본료 폐지를 골자로 한 '통신료 인하'에 대한 억울함을 강조하는 이들의 항변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미래부가 통신료 원가 공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료 원가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부분이다. 통신사들은 저마다 영업 기밀을 이유로 통신료 원가 공개를 하지 않았다. 통신료 원가가 비공개라는 점은 소비자가 통신료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그동안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통신료 원가가 공개될 경우 통신사의 수익 구조의 거품 여부를 소비자가 직접 확인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통신료 인하 추진에 있어 인하 여력이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통신료 원가 등도 고려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통신료 원가가 공개될 경우 각종 수치를 내세우며 '국내 통신료가 저렴하다', '기본료 폐지시 적자로 돌아선다' 등의 주장을 해온 이동통신업계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통신료 인하 관련 대선 공약들이 매번 등장하는 것은 통신료가 비싸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통신사가 정부의 압박이 심하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보다는 통신료 원가를 공개, 폭리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면 해결될 텐데 통신료 원가를 공개하지 않아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업계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라 이를 거부하는 모양새란 얘기다.
이동통신업계는 미래부의 통신원가 공개 가능성이 알려지자 '당황스럽다'는 분위기다. 통신비 원가공개 논란은 지난 2011년도부터 참여연대가 방송통신위원회를 대상으로 소송을 시작, 현재 대법원에 3년째 계류 중이다.
201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이 "통신요금 원가는 영업비밀로 가치가 크지 않고, 공개를 통한 공익적 가치가 더욱 크다"며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방통위의 업무를 인수한 미래부와 함께 보조참가자로 소송에 참여한 이통 3사가 상고장을 제출, 대법원의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대법원이 판결을 확정할 경우 이통3사는 통신비 원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2014년 3월 이후 3년간 대법원에 계류 중이지만 공판 한번 열리지 않았던 소송전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통신업계는 원가공개 반대 근거로 "기업 핵심적인 경영과 영업상 비밀이 경쟁사에 무방비로 노출돼 기업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고 공정한 시장 경쟁을 위협할 우려가 크다"며 "민간기업 핵심 영업비밀을 공개하라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고, 마치 기업이 심혈을 기울인 특허나 제품 설계도면을 공개하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기본료 폐지의 반대의 불똥이 통신료 원가 공개로 옮겨 붙어 원가 공개가 이뤄질 경우 그간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통신료 폭리, 담합 등의 새로운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5:3:2의 고착된 시장에서 수익을 위해 자율경쟁을 피해왔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이동통신 사업은 대규모 장치 사업으로 초기 투자비용은 많이 들지만 그 이후로는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특성이 있다.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진다면 사업 경과에 따라 요금 인하의 유인이 크므로 요금이 지속적으로 인하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 이동통신사는 정반대로, 새로운 서비스 출시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요금을 큰 폭으로 인상해 왔다. 특히 비슷한 요금제를 통해 경쟁보다는 이익을 위한 경영을 해왔다는 비난도 면키 어렵다.
일례로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4.9GB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6GB요금제를 대부분 사용한다. 이통3사가 제공하는 요금상품엔 4~5GB대 상품이 없기 때문이다. 3GB와 6GB의 요금제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데이터 추가 사용시 과도한 요금 발생을 우려한 결과다. 통신원가가 공개되지 않아 데이터 통화료 비교를 통한 합리적 소비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통신원가가 공개될 경우 이통3사의 그동안 영업 전략의 전면 수정 등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자사 이익을 위해 자율경쟁을 자제해왔다는 소비자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며 "인식 개선을 위해 소비자 중심의 요금제 전면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파생되는 요금제 개편으로 인한 수익감소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