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재벌가 사모님모임' 前 회장 악플로 법정행

이규복 기자

기사입력 2016-11-16 11:07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거액의 기부도 거리낌이 행했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천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침묵의 살인자'로 돌변해 한 커리어우먼에 대한 허위사실을 지속적으로 유포해 왔다. 같은 여성으로서 상대가 받을 심적 고통은 전혀 개의치 않는 '악마'의 모습이다.

재벌가 안방마님의 모임인 '미래회' 회장까지 지냈던 60대 여성주부 김모 피고인의 '사이버 폭력행위'가 어떤 결말을 맺을 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김모 피고인은 외신기자인 조모 기자가 재벌 회장에게 내연녀를 소개시켜 줬다'는 등의 허위 댓글을 지속적으로 달아 오다 지난 9월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사람의 영혼까지 갉아먹는다는 '악플'이 반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검찰과 경찰 등 사정당국과 법원 등 사법당국도 강력한 처벌에 나서고 있다. 피해자들도 2차 피해를 의식해 숨어오던 관행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맞대응 중이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김모 피고인에 대한 2차 공판도 달라진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각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례적으로 피해자인 조모 기자가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악플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셀러브리티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악플 때문에 자살한 연예인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악플은 안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제가 당사자가 되고 보니 그 정신적 피해와 압박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칼만 안 들었지 사람을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25년간 유명 외신기자로 활동해온 조모 기자는 이날 재판장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피해사실을 증언했다.

"외신기자로서 공정성과 명예만 믿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댓글로 인해서 모든 가치관이 땅에 떨어진 느낌입니다. 피고인은 재벌가 안주인들 모임의 핵심인물로 몇백만원의 벌금은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악플러에 대한 처벌수위가 너무 낮다 보니 반성도, 사과도 않는 것입니다. 재판장님, 피고인을 엄히 처벌해서 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선례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김모 피고인은 미래회 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언론에서도 김모 피고인이 이끌었던 자선모임을 '숨은 선행', '따뜻한 외출' 등으로 수차례 보도한바 있다. 최태원 SK 회장의 부인 노소영씨도 이 자선모임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김모 피고인은 봉사라는 따뜻한 외적 이미지와는 무관하게 사이버상에서는 타인의 명예를 짓밟는 전사였다. 혼자만 일탈행위에 나선 것도 아니다. 한 인터넷카페의 실질적인 운영자이기도 한 김모 피고인은 이 카페의 회원들을 댓글부대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2차 공판이 열리기 직전에도 자신의 공판 일정과 법정 호수를 알리며 동조해 줄 것을 선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모 피고인은 지난달 열린 첫 공판에서 악플 행위를 시인했다. 다만, 악플을 달 당시에는 허위사실인지 몰랐고, 명예훼손이 되는지 몰랐다고 항변중이다. 김모 피고인은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댓글을 달고 있다. 법정에서와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한 행동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정착되고 있는 악플러에 대한 엄벌 기조가 후퇴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법조인은 "위증 행위가 진실을 밝히려는 검찰과 법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 행위인 것처럼 악플은 공인이든 일반인이든 한 개인의 삶을 짓밟는 반사회적 범죄"라면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악플러는 사회와 격리해 법이 살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


제37회 청룡영화상,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