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3)의 장남인 신동주씨(61)가 최근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모든 자리에서 잇달아 해임되면서 롯데그룹 후계 구도에 대한 구구한 억측이 나돌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옛 현대그룹의 후계 구도 변화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동안 롯데그룹은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을 이끌어왔고, 한국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회장(60)이 경영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신 회장이 한·일 양국의 롯데를 모두 경영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유력해지고 있다.
해임 이유와 관련, 일본 언론들은 일본 롯데홀딩스와 롯데의 사장을 맡고 있는 전문경영인인 츠쿠다 타카유키씨(71)와의 의견 충돌 때문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재계·증권가에서는 뭔가 신 총괄회장을 격노시킨 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로 분석하고 있다. 대기업의 임·직원들은 "한국 롯데그룹 경영권을 넘본다든지 쿠데타와 같은 행보를 취했기에 전격 해임시켰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증권정보제공업체의 한 대표도 "신격호 총괄회장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신동주 전 부회장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후반부터 지난해 중반까지 롯데제과 지분을 확대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지난해말 증권가 일각에서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에게 한국 롯데그룹의 레저 부문을 떼어달라고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해 공시된 롯데알미늄 사업보고서에는 신 전 부회장의 역할이 '그룹 회장'으로 표기돼 있었다. '자문'이라고 지난 8일 정정하기는 했지만 신 전 부회장이 물밑에서 롯데알미늄은 물론이고, 한국 롯데그룹 경영에 개입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즉, 신 전 부회장이 성장세가 멈춘 일본롯데의 한계를 알고는 한국 롯데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기를 원했고, 실제 했을 수도 있다는 것.
"신동빈 회장이 한·일 롯데 다 맡을 듯" vs "광윤사 등 지분 향방 더 지켜봐야"
재계 일각에서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최근 일련의 행보가 과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떠올리게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당시 80대 중반으로 연로한 정 명예회장은 기존 현대그룹 후계 구도를 크게 뒤흔들었다. 그러면서 정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구 당시 현대그룹 회장을 2선으로 물러나게 하고 삼남인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의장을 현대그룹 회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신 총괄회장의 의중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롯데그룹 후계 구도가 옛 현대그룹처럼 '빅뱅'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한·일 양국의 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신 총괄회장은 28%, 포장자재 판매업체인 광윤사가 22%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도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20% 가량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은 광윤사의 지분도 절반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신 총괄회장이 보유한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의 지분만 있으면 한·일 롯데를 모두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일단 신 총괄회장 지분이 신 회장에게 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럴 경우 신 회장은 한·일 양국의 롯데그룹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최근 일련의 사건 뿐만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단 지바 롯데마린스의 구단주 대행을 신 회장에게 맡긴 것이 그 근거다. 구단주 대행을 시킨 것은 신 총괄회장이 오래전부터 내심 한·일 롯데를 모두 신 회장에게 맡기려 한 것으로 재계 일각에서는 추측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과 관련, 한국 롯데는 "연합뉴스나 일본 신문 등을 통해서 아는 것 외에는 없다"고 밝혔다. 일본 롯데 측도 "회사 기밀에 관한 것으로, 대답할 수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의 전직 사장은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 3개사 이사에 해임됐다는 보도가 나온 후 "현 시점에서는 후계 구도가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으나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서 마저 해임되자 "(후계 구도 변화를) 전혀 알 수 없다"며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신 회장의 일본 롯데 경영권 접수 조짐은 더 있다. 지난 9일 일본에 있던 신 전 부회장이 한국에 들어오자, 반대로 신 회장은 지난 10일 일본을 방문한 것. 한국 롯데는 "업무 출장으로 보인다"며 "(신동주 전 부회장) 해임 건과 무관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재계에서는 한·일 양국의 롯데가 신 회장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상징적인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의 '노여움'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그동안 90대에 접어든 신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설이 끊임없이 돌았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은 2013년 고관절 수술로 앓아눕기도 했다. 결국 이사나 부회장 해임 건은 후계 구도에 전혀 영향이 없기에 지분 향방을 봐야
신 총괄회장의 의중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신 총괄회장의 보유 지분 향방에 관계없이 신 총괄회장 사후에 한·일 롯데의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어쨌든 롯데가(家) 후계 구도는 올 한 해 재계와 증권가를 뜨겁게 달굴 핫 이슈임은 분명하다. 경제에디터 jwj@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