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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창업신화, 막 내리나?

송진현 기자

기사입력 2015-01-09 10:25


'센트레빌'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잘 알려진 동부건설의 소액주주들은 지금 참담한 심정이다.

동부건설의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진 후 첫 거래일인 8일 코스피에 상장된 동부건설은 시초가부터 하한가(855원)로 추락했다. 하한가 잔량만 200만주 넘게 쌓여 소액주주들은 주식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통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함께 기존 주주들을 상대로는 대규모 감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소액투자자들은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된다. 이 회사의 주식 총수는 5004만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71)이 33.92%의 지분을 보유한 것을 비롯해 특수관계인이 46.53%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 2675만여주를 개인투자자들이 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돼 줄잡아 5000명이 넘는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볼 전망이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3000원대에 거래됐다.

뿐만 아니다. 2000여개의 협력업체들도 줄도산 위기에 몰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금융당국은 동부건설이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달 31일 이후 협력업체들에 대한 긴급 점검작업을 벌이고 있다. 보통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대주주 지분은 거의 전액 감자당하는 것이 관례이기에 김준기 회장은 이번에 경영권을 상실함과 아울러 동부건설과는 이제 사실상 인연의 끈을 놓게 됐다.

동부건설은 동부그룹의 모체

김 회장이 동부건설의 전신인 미륭건설(1989년 동부건설로 개명)을 창업한 것은 그의 나이 24세 때인 1968년. 김 회장의 부친인 김진만 전 국회 부의장은 그에게 정계입문을 권유했으나 김 회장은 이를 뿌리치고 일찌감치 사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 회장은 1970년대 건설붐이 일어난 중동지역에서 200억달러의 공사를 수주하는 등 건설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그는 이 때 번 돈으로 1983년 정부로부터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하는 등 성공한 사업가로서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때도 퇴출기업이 한개도 없을 정도로 김 회장의 경영능력은 돋보였다. 하지만 반도체사업(동부하이텍)이 적자의 수렁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건설업도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동부건설도 자금사정이 악화, 그룹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동부그룹은 급기야 2013년말 채권단과 비금융 회사들을 상대로 구조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동부제철이 지난해 채권단의 손에 들어간 것을 비롯해, 동부특수강과 동부발전·동부익스프레스 등은 매각되었고 동부하이텍은 매각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부그룹의 비금융 계열사들은 사실상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특히 이번에 김 회장은 자신의 창업기반인 동부건설이 와해된 것에 크게 실망한 탓인지 울분을 토로했다,


김 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자산의 헐값매각, 억울하고 가혹한 자율협약, 무차별적 채권회수 등 온갖 불합리한 상황들을 겪으며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땀 흘려 일군 성과들이 구조조정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정책기관인 산업은행의 주도로 이뤄진 구조조정이 이런 결과를 낳을 것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며 산업은행에 화살을 겨눴다.

소액투자자들, "오너 일가만 잘 살려고 동부건설 버렸나?"

하지만 동부건설의 일부 소액투자자들은 "이번 법정관리는 김준기 회장의 이기주의가 빚어낸 산물"이라며 오히려 김 회장을 강력 성토하고 있다.

김 회장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결국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알토란같은 금융분야의 경영권을 사수하다보니 비금융 회사들이 채권단의 칼날에 휘둘렸다는 비판이다. 적자투성이인 비금융회사들은 채권단의 손에 넘어가더라도 동부화재 등 탄탄한 동부그룹의 금융회사가 살아남았기에 김 회장 일가는 재벌의 위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소액 투자자들의 항변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3년 11월부터 동부그룹 비금융 계열사들의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그룹 오너인 김 회장도 나름대로 그룹의 정상화에 힘을 보탤 것을 수차례 요구했다. 그 일환으로 오너일가가 보유한 동부화재 주식의 담보제공을 꾸준히 제의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 같은 산업은행의 요구를 거절했다,

동부화재는 2013년 279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고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3700억원의 흑자를 낸 동부그룹의 캐시카우다. 동부그룹 금융회사의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의 최대주주는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40). 김 부장은 14.4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준기 회장이 6.93%로 2대주주에 올라있는데, 김 회장의 주식은 이미 담보로 잡혀있는 상황. 때문에 채권단은 김 부장의 동부화재 주식을 담보로 요구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아들의 경영권을 지켜주고 싶었는지 이를 잇달아 거부했다, 산업은행은 이번 동부건설 법정관리에 앞서 동부건설로부터 1000억원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김 회장 측에 그 절반인 500억원을 댈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를 외면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김준기 회장이 아들을 지켜주기 위해 그룹의 비금융회사들에서 손을 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 측은 동부건설 법정관리행과 관련, "협력업체 피해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에는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요청했으나 이마저 거부당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산업은행의 요구를 김 회장이 거절한 것에 대해서는 "그룹의 구조조정은 비금융 계열사의 구조조정이다. 금융계열사와는 분리돼 있고 법적으로도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를 지원할 수 없다. 그룹 입장에선 최선을 다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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