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떨어진 여름철 면역력 저하로 농가진 환자 급증

나성률 기자

기사입력 2013-07-24 10:03


지난 6월 첫 아이를 출산한 이진순씨(여·34)의 배에는 1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작은 갈색 흉터가 두 개나 남아있다.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다 모기에 물린 듯 간지러워 손으로 긁었던 것이 농가진으로 발전한 것. 다행히 항생제 연고를 처방받아 열심히 바른 덕분에 다른 곳으로 전염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질병의 이름도, 어른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6살과 3살 딸아이를 키우는 김혜영씨(여·28)는 요즘 '산 하나를 넘었더니 더 큰 산을 만난 느낌'이다. '수족구병이 유행'이라는 언론 보도에 '잘 넘겼는가' 싶었더니 아이가 농가진에 걸렸다.

며칠 전 큰 딸아이는 팔을 긁으며 "엄마 너무 간지러워"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모기에 물려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와 같이 물파스만 바르면 곧 진정이 되겠거니'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물집이 가라앉기는 커녕 크기도 커지고 색상도 검어졌다. 그제야 단순히 모기에 물려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혜영 씨는 딸을 데리고 병원에 방문했다가 농가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모기 물린 후 침 바르고 긁는 행위 '절대금물'

약을 구하기 어렵던 시절, 농촌에서는 모기에 물린 후 침을 바르고 손톱으로 십자가 표시로 꾹 눌러 가려움증을 완화시키곤 했다. 때에 따라서는 가려움을 참지 못해 긁다가 피가 나 딱지가 앉는 경우도 있었다.

행여나 그동안 모기에 물린 아이에게 '우리가 어릴 때는 모기 물린 후 침을 발랐다'며 별다른 치료를 해주지 않은 적이 있다면 '운이 매우 좋았다'고 여겨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상처 부위로 세균이 침투해 더 큰 병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처 부위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해 고름이 생기고 딱지가 지는 농가진은 덥고 습한 이맘때 생기기 쉽다.

세균 활동 늘고 면역력은 떨어진 여름철 '건강 적신호'


농가진은 상처부위에 세균이나 바이러스, 곰팡이가 침투해 2차적으로 물집과 진물이 생기고 딱지가 지는 2차 감염병을 말한다. 황색포도알균과 화농성 사슬알균이 원인인데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아토피 피부염으로 인해 난 상처 또는 모기에 물린 부분을 긁었다가 발병하는 경우가 흔하다.

바이러스와 세균, 곰팡이로 인해 생기는 질환이다 보니 시기적으로는 여름철인 7월과 8월에 가장 많이 생긴다. 덥고 습한 날씨는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일 뿐 아니라 인체의 면역력은 저하되기 때문. 이 시기는 모기와 같은 벌레도 많다.

면역력과 연관되다 보니 성인보다는 유아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것도 특징이다. 성인이지만 이진순 씨가 농가진에 걸린 것은 출산 후 산후조리를 위해 더운 곳에서 생활한데다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신선희 교수는 "쉽게 지치기 일쑤인 여름철은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잘 챙겨먹지 않는 등 식욕부진과 탈수 등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시기"라며 "이때 몸속으로 세균이 침투하면 평소와 달리 감염병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해 30만명이 병원을 찾는 제2 감염병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농가진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소폭이나마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7만69명에 불과했던 2009년과 달리 2010년에는 29만2178명, 2011년에는 29만8916명이 농가진으로 진단을 받았다. 성별로는 2011년의 경우 남성이 14만9746명으로 여성 14만9170명보다 조금 더 많았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의 월별 진료인원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서는 농가진 환자가 7월과 8월에 가장 집중됐다. 특히 8월 진료인원은 5만9564명으로 월평균 진료인원인 2만7238명보다 2배가량 많았다. 7월 진료인원은 4만1928명으로 8월 다음이었다.

신선희 교수는 "농가진 환자가 여름에 특히 많은 것은 모기와 같은 벌레가 많은 시기인데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맞아 산과 바다로 나들이를 갔다가 벌레에 물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간지러운 아토피 피부염도 농가진의 원인

아토피 피부염과 같은 피부질환의 유병률이 늘어난 것도 농가진 환자의 증가와 영향이 있다.

아토피 피부염은 만성적이면서도 재발 가능성이 큰 염증성 피부질환으로 소양증(가려움증)이 가장 큰 특징이어서다. 또 피부 병변의 분포와 반응 양상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유아의 경우 진물이나 딱지가 지는 급성 습진이 주로 나타난다. 즉, 아토피 피부염으로 인한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 긁다가 진물이나 딱지가 생기고 또 긁음으로써 농가진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아토피 피부염 유병률은 어린이가 20.6%, 청소년이 12.9%로 15년 전에 비해 각각 2.2배, 3.2배 정도 늘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2'에서도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아토피 피부염을 진단받은 초등학생은 20.6%나 됐다.

합병증 동반 시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질환

농가진의 가장 큰 증상은 온 몸에 물집이 생기는 것이다. 작은 물집이 여러 개 생긴 후 점차 큰 물집으로 번지고 터트리면 맑은 분비물이 나온다. 이 증상만으로는 크게 위험하지 않지만 간혹 무력증과 발열, 설사를 동반하는 경우 예의주시해야 한다. 특히 수족구병과 같이 패혈증이나 폐렴과 같은 합병증이 생기면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또 물집이 터진 후에는 짙은 갈색 형태의 딱지가 생기며 가장 자리가 테를 두른 듯한 모습의 흉터가 남기도 한다.

진단은 임상적으로도 충분히 타 질병과 구분되기에 별다른 검사 없이 확진 가능하다. 치료는 증상이 경미하거나 수포의 수가 적은 경우, 별다른 합병증이 보이지 않을 때 딱지를 제거하고 항생제를 도포한다. 대부분 2주 정도면 자연 치유되지만 화농성 사슬알균에 의한 경우 급성 사구체신염이 발병할 수도 있다.

신선희 교수는 "농가진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질환이다. 몸이나 손 등에 생긴 수포를 무시했다가는 전신으로 퍼질 수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타인에게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항생제를 바른 다음 더 이상의 물집이 생기지 않으면 전염성이 사라졌다고 봐도 무관하다"고 말했다.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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