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남매를 호령하시던 친정어머니가 팔순을 넘기셨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혼자 외로우실만도 한데 다행스럽게도 경로당을 다니시면서 친구들과 어울리시는게 여간 보기 좋은게 아니다. 이젠 노모라고 불리우는 친정어머니, 왕년의 불같던 성격이 어디갔을까? 그랬담 노모가 아닌 우리 엄마였을텐데 그때가 그립다. 경로당에 어르신들은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생과 같아서 누구 아들 누구 딸이 찾아오면 자랑이 되고 참 좋아라들 하신다.
노인복지관련으로 간간히 00복지관에서, 00회에서 찾아오는데 그 때마다 쌀이며 김이며 라면같은 먹거리 등을 갖고 오신단다. 참 고마우신 분들, 바쁜 척하는 자식들로서 여간 미안하고 고마운게 아니다. 그랬는데…
평소 야박한 라면 인심, 보시락보시락 라면봉투가 내는 소리에 군침을 삼키는 아이들을 위해 얼른 물을 올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어째 좀, 이상하다. 젓가락을 들고 막 한두입을 먹던 아이들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엄마, 맛이 이상해" 한젓가락 먹어보니 기름쩐내가 난다. 라면 메이커를 확인하고 왜 이런가싶어 또 한번먹어보지만 그 쩐내가 비위를 확 상하게 한다. 원인은 유효기간이었다. 한참도 지난 라면의 유효기간, 처음엔 그랬다. 엄마가 손자들 준다고 아끼다 아끼다 유효기일이 지났구나라고. 하지만 엄마의 말은 달랐다.
"이상하네 그거 받은 지 얼마 안되었는데…"
냄새나도 상관없다며 아까운데 절대 버리지말고 다시 갖고오라는 엄마의 말에 대강대강 답변하고 갖고 온 라면을 보니 모두 유효기일이 상당히 지난 거였다.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다 열어서 음식과 봉투를 분리하고,이걸 들고 오느라 힘들다고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전철타고 올걸 하며 아이는 더 억울해 한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엄마에게 다녀오는 길에 포장김을 얻어왔다. 식탁위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아이가 얼른 집는 김, 그러나 이내 " 엄마, 이 김 이상해"라며 저쪽으로 치운다. 밥맛을 떨어뜨리는 기름쩐내.
"그것 메이커야. 이름있는건데" 하면서 포장지를 보니 또 유효기간이 지난게 아닌가? 김을 준 단체가 어머니집에 찾아 온것이 불과 2주전이었다. 내가 면담날짜를 조정했기 때문에 분명했다. 빈손으로 업무만 보고 가도 되는데 아니 그냥 빈손으로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또 음식과 포장지를 분리할 생각을 하니 짜증이 확 났다.
"엄마, 왜 할머니한테 온 것은 다 유효기일이 지났어?" 라고 묻는 아이들.
"응, 할머니는 눈이 나빠서 이 날짜들이 안보이셔. "
아이들은 더이상 할머니집에서 뭔가를 갖고 오려하지않는다. 뭔가를 발견해도 유효기일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어머니는 "야, 그건 할머니가 수퍼에서 산거야, 괜찮은거야" 덧붙여 "얘, 이런 것 먹어도 괜찮아. 우리 경로당에서는 맛있게 먹는데 왜그러냐?" 라며 날짜 따지는 날 못 마땅해 하신다.
난 속상해진다. 아무리 제일 먼저 늙는게 미각이라지만 노인들이 이렇게 기름쩐내 나는 음식을 아무렇지않게 드실 모습을 생각하면 때마다 가서 유효기간을 확인해 보고싶다. 그나마 봉투에 담겨져 있는 건 날짜라도 확인한다지만 박스에 담겨있는 당면, 쌀같은 건 어떻게 그 품질을 보증할 수 있을까?
물론 진심으로, 노인 대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파는 상품을 갖다드리는 정성들은 너무 고맙다. 하지만 00단체에서나 그래도 공공성이 있는 00회에서 인사치레로 먹거리를 가지고 올때는 그래도 유효기일이 어느정도는 남아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상품가치가 전혀없는 것을 들고 와서 하는 말, "건강하세요"다.
경로당이나 노인이 아닌 다른 대상을 찾아뵙는거라면 과연 이렇게 무심하게 '아무거나' 갖고 올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부모님께 갖다 드리는 것, 날짜 확인 안하냐란 말이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자식으로서 뭔 할말이 있겠나, 그래도 우리 엄마, 남의 눈에는 노모, 경로당 할머니이겠지만 유효기일이 훨씬 지난 음식을, 이상한 맛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고맙다시며 드실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엄마는 노숙자도 걸인도 아닌데 왜 이런 음식을 얻어드시나. 과연 내 자식한테 그런 음식 끓여주겠나? 아니, 유효기일 한참 지난 거 아무리 싼 가격, 아니 거저라도 받겠냐 말이다.
엄마가 그러셨다. "우리 경로당에서는 잘 먹어. 절대 버리지 말고 다시 갖고 와"
선물이란 나에게 필요 없어서 주는 게 아니다. 버릴 물건을 주는게 선물인가? 차라리 소주 한병에 오뎅국물이 낫다.
뭔가를 받아오시면 손자들 줄 요량으로 뜯지도 않고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 봉투에 찍힌 날짜가 제발 동네가게만 같기를 바란다.
그리고 노인복지와 관련해 정말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 꼭 알아야하는 것, "어르신들은 얻어 먹는게 아니라 어르신들을 대접해 드리는 겁니다"
SC페이퍼진 1기 주부명예기자 최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