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K리그 첫 혈투 앞둔 홍명보·최용수 공동 신년인터뷰 "양복입고 제대로 붙읍시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21-12-30 09:27 | 최종수정 2022-01-03 06:00


강원 FC 최용수 감독과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이 본지와 신년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김성원, 김가을 기자]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형형한 눈빛만 봐도 범이 떠오르는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53)은 호랑이와 인연이 깊다. 호랑이가 마스코트인 고려대 출신인데, 울산의 간판도 호랑이다. 2022년이 '호랑이의 해'라 제대로 물을 만났다.

연세대 출신으로 별명은 '독수리'지만 최용수 강원FC 감독(51)도 맹호의 기운이 느껴진다. 임인년을 상징하는 '검은 호랑이'의 강력한 리더십과 딱 어울린다. '풀밭'이 그리워서 돌아온 그는 올해는 더 화사한 꽃을 피울 차례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홍 감독과 최 감독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다. 하지만 그라운드에는 아군 아니면 적군 뿐이다. 두 사령탑은 돌고, 돌아 올해 처음으로 K리그에서 '적'으로 맞닥뜨린다. 무대에 오르기 전 홍 감독과 최 감독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K리그라는 공통분모에서 가진 첫 단독 '듀오인터뷰'다.


강원 FC 최용수 감독과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이 본지와 신년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
출발부터 유쾌했다. "'행님' 파마했어요?" 최 감독이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목청을 높이자, 홍 감독은 쑥스러운 듯 따뜻한 미소로 후배를 바라봤다.

홍 감독과 최 감독의 인연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예선 때부터 룸메이트였다. 홍 감독이 '방장', 최 감독은 '방졸'이었다. "1997년 아시아예선 때는 용수가 다 했지. 날아다녔잖아. 광고판 위에서 자빠지지 않나. 경기장 안팎에서 다 했어." 홍 감독이 한껏 치켜세우자, 최 감독은 "그때는 걸리면 골이었으니까"라며 으쓱거렸다. 그리고 "사실 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듬어지지 않은 선수였는데 형과 방을 같이 쓰면서 조심해야 할 것도 많이 배웠다"며 고마워한 후 "그래도 형의 최상의 컨디션은 내가 만든거다"라고 자랑했다. 그러자 홍 감독이 "내가 늘 먼저 잠을 청하는데, 얘는 TV리모컨을 손에 놓지 않고 그냥 자는 습관이 있더라. 그래서 매일 밤 '자냐?', '자냐?'를 반복해 물었을 정도"라며 옛 추억을 공유했다.

2021년은 변신의 해였다. A대표팀 코치, 20세 이하, 올림픽, A대표팀, 항저우 감독을 지낸 홍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잠시 외유했다가 현장으로 복귀, 처음으로 K리그와 만났다. FC서울의 전성기를 이끌며 아시아축구연맹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한 최 감독도 16개월 만에 새 길을 찾았다. 시즌 막판인 2021년 11월 강원의 지휘봉을 잡았다.

흘러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지만 울산의 아쉬움은 여전하다. '트레블(K리그, FA컵,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을 꿈꿨지만 K리그 준우승과 ACL과 FA컵 4강에 만족해야 했다. 홍 감독이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포항과의 ACL 승부차기가 분수령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다른 것들은 못했다고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데 그 승부차기 딱 하나다. 전북이랑 120분, 포항하고도 120분 경기를 했다. 그 승부차기만 이겼으면 어떻게 될지 진짜 몰랐다. 그 분위기를 탔다면 다 잡았을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으니까. 이젠 그걸 넘어서야지."


최 감독은 "전북의 유일한 대항마가 울산이었고, 전북을 뛰어 넘을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도 많았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실패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또 다른 내일의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걸 봤다. 대표선수가 울산에서 거의 다 나오고 있는 것 또한 자부심이 될 수 있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강원은 '0%의 마법'을 풀어냈다. 승강 플레이오프(PO)에서 1차전 승리팀은 한 팀도 예외없이 모두 1부행에 성공했지만 기록은 기록에 불과했다. 1차전에서 패한 강원은 2차전에서 4분 만에 3골을 터트리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기적으로 K리그1 잔류에 성공했다. '최용수 매직'이 역사를 뒤집어 놨다.

홍 감독은 "운이라고 또 얘기하기에는 좀 그렇잖아"라며 웃은 후 "강원 상태가 썩 좋지 않았는데 역시 최 감독이 최고 적임자였다. 감독 능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며 엄지를 세웠다. 훈훈한 분위기에 최 감독은 "2부 감독도 내 커리어에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들어갔다. 1차전 첫 골 먹었을 때도 '아, 광양(전남·2부)까지 가려면'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강원도에서 광양까지는 정말 멀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강원 FC 최용수 감독과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이 본지와 신년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
K리그는 첫 대결이지만 두 감독은 2016년 9월, 중국에서 한 차례 맞붙었다. 홍 감독은 항저우, 최 감독은 장쑤를 이끌 때였다. 당시 우승을 다투던 장쑤가 강등 위기의 항저우에 0대3으로 완패해 '난리'가 났었다. 최 감독은 "그 경기로 인해 중국에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일부러 져 줬다고"라며 억울해했다. 이어 "중국에서의 쓰라린 패배의 아픔을 K리그에서 갚아줄 것"이라고 도발했다. 그러자 홍 감독은 "우리가 장쑤를 이길 수 있는 실력이 안되긴 했는데"라며 놀렸다.

K리그에서의 맞대결, 최 감독은 "미리 구상을 알려주겠다. 우리는 극단적인 수비"라며 단칼에 정리하자, 홍 감독은 "올해는 우리가 운이 좋았는데, 내년에는 강원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새해 울산도, 강원도 희망이다. 홍 감독은 "지난해는 기존에 있던 전력으로 했는데 올해는 실질적으로 내 생각을 모두 녹여낼 수 있는 첫 시즌이 될 것이다. 우승 말고는 목표가 없다"고 강조했다. 최 감독은 "순위를 떠나 미래가 보이는 구단을 만들고 싶다. 명문구단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월드컵의 해'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이 11월 개막된다. 홍 감독과 최 감독은 이구동성으로 "경험하지 못한 겨울월드컵이지만 16강 이상 갈 것으로 본다. 16강 진출 후에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응원했다.

마지막으로 최 감독이 불쑥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행님', 우리 약속하나 합시다. 우리 경기장에서 양복입고 붙읍시다. 우리 와이프가 그래요. 홍 감독님 정말 멋진데 왜 트레이닝복만 입고 나오시냐고."

홍 감독이 화답했다. "내가 대표팀 때 늘 양복 입었잖아. 그건 '아임 레디', 선수들에게 난 준비돼 있다는걸 보여주는거였어. 그런데 올해는 그게 잘 안 됐어. 양복도 내가 그냥 입니? 내가 너처럼 검은 양복에 빨간 타이 그렇게만 입냐. 여유가 없었어. 하지만 좀 전에도 말했잖아. 올 해가 울산에서의 진짜 첫 시즌이라고. 그렇게 하자."

한 '예능'하는 최 감독은 인터뷰내내 "한국 축구의 상징", "선후배들이 믿고 따르는 부드러운 리더십", "솔선수범", "변함이 없다" 등 존경의 멘트를 수도 없이 날렸고, 홍 감독은 그때마다 "에이 하지마, 또 어디서 방송처럼 하려고"라며 수줍어했지만 싫지않은 기색이었다.

홍 감독과 최 감독은 울산과 강원을 이끌고 3일부터 전지훈련에 돌입한다. 다시 실전을 준비하는 홍 감독이 최 감독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용수야, 건강 챙겨라." 벌써부터 K리그 개막의 '봄기운'이 밀려왔다.
김성원, 김가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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