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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다이크 같은 '수비수 MVP', K리그에선 볼 수 없다, 왜?

윤진만 기자

기사입력 2020-11-18 06:30


◇왼쪽부터 홍정호 정승현 권경원 정태욱 김광석. 스포츠조선DB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이달 초 막 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에서 최우수선수상(MVP) 후보로 오른 선수는 수상자인 손준호(전북)를 비롯해 주니오(울산) 세징야(대구) 일류첸코(포항) 등 4명이다. 미드필더가 하나, 공격수가 셋이다. 수비수는 없었다.

프로축구에서 이같은 현상이 십 수년간 지속돼 이제는 하나의 '문화'를 자리잡은 듯 하다. 마지막 '수비수 MVP'가 1997년 김주성(당시 부산 대우 로얄즈)이다. 출범 초창기에는 그나마 수비수의 진가가 인정을 받았다. 박경훈(1988년·포항제철) 정용환(1991년·대우 로얄즈) 홍명보(1992년·포항제철)가 MVP에 올랐다. 오히려 공격수가 찬밥 신세였다. 그러다 안정환(1999년·부산 대우) 최용수(2000년·안양 LG)가 잇달아 수상한 뒤부터 근 20년간 공격수 세상이 펼쳐졌다. 수준급 외국인 공격수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토종 공격수와 외인 공격수가 MVP를 두고 각축전을 벌였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8년 연속 원톱 성향의 공격수가 내리 수상하기도 했다. 이동국(은퇴) 김신욱(상하이 선화) 등의 뒤를 이을 대형 공격수가 보이지 않는 최근에는 이재성(2017년·전북) 김보경(2019년·울산) 등 영향력 있는 국가대표급 미드필더들이 '왕별'로 뽑혔다.

그 과정에서 수비수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시즌 동안 MVP 최종후보로 오른 30명 중 수비수는 단 3명에 불과하다. 2012년 곽태휘(울산), 2014년 차두리(서울), 2018년 이 용(전북)만이 수비수 체면을 지켰다. 그나마도 센터백은 곽태휘 한 명이다. 세계 축구의 흐름과는 배치된다. 네덜란드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리버풀)는 2019년 수비수로는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신계' 공격수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를 제쳤다. 반 다이크는 2019~20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올해의 선수상 최종 후보 3인에도 이름 올렸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 정도의 압도적 수비력을 자랑하는 선수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 2~3년간 반 다이크를 비롯해 해리 맥과이어(맨유) 마타이스 데 리흐트(유벤투스) 뤼카 에르난데스(바이에른 뮌헨)가 1000억원에 가까운 이적료를 기록한 것에서 수비수의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다.


◇2019년 UE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 AFP연합뉴스
K리그에선 아직 수비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누구나 "수비가 가장 중요해"라고 말하지만, 결과를 내는 최전방 공격수,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는 측면 공격수,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비해선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여긴다. 올해 인재가 없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홍정호(전북)는 안정적인 수비로 팀의 더블 우승을 뒷받침했고, 정승현(울산)은 중요한 경기에서도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김광석(포항) 권경원(상주) 정태욱(대구) 홍준호(광주) 오반석(인천) 헨리(수원)의 활약도 돋보였다. 홍정호는 이와 관련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수비수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10번 잘해도 1골 먹으면 안 좋게 본다. 불리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MVP는 아무래도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측면이 있다. 세계적으로 센터백들이 가치를 인정받으면 자연스레 K리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 홍정호도 "수비수 MVP가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후배 중 좋은 선수들이 많다. 정태욱 김재우(이상 대구)는 올림픽 대표에 오르면서 잘 성장하고 있다. 정태욱은 피지컬이 워낙 좋아 유럽에서도 통할 선수"라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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