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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떠나는 수장의 배려인가, 몽니인가.'
GS스포츠단이 '정권 교체' 마지막까지 잡음을 자초하고 있다.
신임 대표이사가 선임되면서 발전적인 변신을 준비하는가 싶었는데 떠날 대표이사가 '대못박기식 인사'를 단행해 또 구설에 오른 것이다.
GS그룹은 지난 12일 임원인사를 실시하면서 여은주 부사장을 GS 홍보 담당과 GS스포츠 대표를 겸임토록 한다고 발표했다. GS스포츠는 FC서울(K리그)과 GS칼텍스(여자프로배구)를 운영하고 있다.
'재무통' 대표가 떠나고 홍보 전문가 여 대표가 발탁되면서 문제 많았던 FC서울의 혁신 기대감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대는 잠시, 주변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인사가 나왔다.
16일 배구계 등에 따르면 GS스포츠는 지난 13일 여자프로배구단 GS칼텍스의 단장을 교체키로 하고 내부 정리를 마쳤다. GS칼텍스를 이끌던 한병석 단장(상무)에게 사실상 해고 통보를 한 것. GS칼텍스 후임 단장에는 스포츠단 경영지원을 총괄하던 A상무를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발령일은 12월 1일자다.
전격적인 인사 소식은 배구·축구계에 급속히 퍼졌고 "이해할 수 없는 인사"라는 반응과 함께 여러가지 문제점이 지적됐다.
우선 인사 단행 시점에 대한 의혹이다. 타 구단 관계자는 "신임 대표이사가 발표된 마당에 정리하고 떠나야 할 대표가 이런 인사를 단행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정권 교체'를 앞두고 업무 인계 수순에 들어가야 할 대표는 중요 보직에 대한 인사를 하지 않는 게 통상적인 관례다. 그러지 않으면 '대못박기' 의혹을 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새로 부임할 대표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특히 현 엄태진 대표는 그룹의 신임 여 대표 인사 발표 다음날 배구 단장 경질을 단행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어느 조직에서든 신임 대표의 경영 구상에 따라 새로운 판을 짜고 인력을 재배치 하는 게 순리다. 하지만 엄 대표가 떠나기 직전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신임 여 대표는 취임 이후 운신의 폭이 줄어들어 버렸다. 주변에서 "신임 대표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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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상무의 배구단 단장 적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A상무는 2017년 말 엄 대표가 부임한 뒤 GS칼텍스에서 스포츠단으로 이동했다. 엄 대표와 마찬가지로 GS칼텍스에서 재무관리 업무를 주로 맡았고, GS칼텍스 소속이지만 파견 형식으로 스포츠단에 내려와 상무로 승진한 뒤 계속 재무 업무를 지휘했다. 스포츠단 고유의 업무 경험은 없는 셈이다. 특히 A상무는 엄 대표의 경북 K고교 후배다.
공교롭게도 재무통 '투톱'이 등장한 이후 FC서울의 인색해진 투자-불통 이미지는 '급상승'했고, 리딩클럽의 명성은 '급추락'했다. 이제는 신임 대표가 오기 직전, 뽑아내기 힘든 자리에 특정인을 박아두는 '기술'을 부린 형국이 됐다. "'OOO 일병 살리기'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시즌 도중 배구 단장을 경질할 명분도 부족하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한 단장은 1994년 LG스포츠(현 GS스포츠)에 입사해 경영지원팀장, 배구단 사무국장, 경영지원 담당, 축구·배구 사업부문장 등을 역임한 전문 스포츠 행정가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배구단 사무국장을 역임할 때 2007∼2008시즌 V리그 우승, 2008∼2009시즌 V리그 정규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누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지난 2018년 12월 GS스포츠단이 한 단장을 선임할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자체 평가다.
이후 GS칼텍스는 2019∼2020시즌 3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고, 2020년 KOVO컵서는 3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진행 중인 2020∼2021시즌에서 2위를 바짝 추격하는 가운데 특급 용병 러츠 영입, 홈 3경기 연속 매진 등으로 '최고 인기 구단'이 됐다.
배구계에 따르면 한 단장은 지난 14일 홈 첫승을 거둔 현대건설전을 마지막으로 챙긴 뒤 쓸쓸히 떠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배구계와 축구계에서는 "한 단장의 공과를 떠나 스포츠 경험이 없는 신임 단장이 적임자인지 의문이다. 이른바 '몽니' 부리는 인사로 보이기 십상이다"면서 "이런 식의 인사를 보면 인기 높아지는 프로배구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성토했다.
GS는 과거 LG시절부터 '인간존중' 경영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GS스포츠는 최근 2년 새 10여명의 직원이 퇴사했고 '감독(대행)들의 무덤'이 된 데 이어 이번 '상식밖' 배구 단장 경질까지 단행했다. 쉽게 사람을 버리는 풍토로 '인간존중' 철학에 오점을 남겼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조선은 한 단장의 입장을 들어보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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