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속의 영광' FC서울 잔류를 만든 선수단의 '숨은고통'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20-10-19 07:01





[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감독 공석일 때 더 잘 하고 싶었다."

위기의 FC서울을 구한 막내급 선수 조영욱(21)은 17일 성남FC전(1대0 승)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조영욱은 이날 성남과의 K리그1 25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후반 17분 교체 투입된 뒤 35분 김진야의 어시스트를 절묘한 결승골로 마무리했다.

이 덕분에 서울은 최하위 인천 유나이티드(승점 21)와의 승점 차를 7점으로 벌리며 남은 2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1부리그 잔류를 확정했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넘긴 고비였다. 이날 경기만 봐도 그랬다. 사실 서울은 이날 성남에 승리하지 못했다면 서울 팬들 사이에서 또다른 '욕받이'가 될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경기였다.

경기 전 분위기나 객관적 전력에서 성남이 너무 불리했다. 성남은 이전 경기 퇴장 판정으로 인해 김남일 감독이 벤치를 지키지 못했고, 수비라인의 핵심 연제운을 비롯해 김동현 박수일 등 주요 멤버가 퇴장·경고누적 등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차', '포' 떼놓고 나온 성남을 상대로 서울이 이기지 못하면 이상할 일이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서울은 한동안 가슴을 졸여야 했다. 볼 점유율을 높여가며 상대 위험지역까지 열심히 접근했지만 좀처럼 마무리하지 못했다. 성남도 마찬가지여서 애타는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무승부로 끝날 것 같은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조영욱의 드라마같은 골이 나왔다.

경기가 끝난 뒤 감독 역할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는 코치진과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1부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역력했다. 파이널B에 접어들어서 처음으로 한 번 이겼을 뿐인데 잔류까지 확정했으니 더 짜릿했다.

이날 성남전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겪은 과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서울 선수들은 사령탑을 2차례 잃는 아픔을 경험했다. 7월 말 최용수 감독 사퇴 이후 김호영 감독대행 체제에서 근근이 버텨오다가 하위스플릿으로 파이널 라운드를 맞았다.


한데 파이널 라운드의 첫 경기이자 수원과의 슈퍼매치(9월 26일)를 앞두고 김 감독대행이 돌연 사퇴했다. 연이은 감독 사퇴에 선수단 사기와 함께 성적도 추락했다. 연이은 패배를 겪으면서, 그것도 패할 것 같지 않았던 경기를 놓치면서 어느새 강등권에 근접하며 위기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부모나 다름없는 감독이 없는 팀 선수로서의 서러움이 더 컸다. 구단도 상처받은 선수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 주지 못했다.

선수들 스스로, 남은 자들끼리 뭉쳐 서로 보듬고 어루만져가며 '셀프치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수들은 아픈 만큼 성숙해진 모양이다. 종전같으면 잘해야 동점으로 끝날 법한 성남전에서 기어이 승점 3점을 만들어냈다.

조영욱은 "감독님 자리가 공석이라 선수들도 많이 안타까워한다. 감독님이 안 계시는데 계속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선수들의 자존심이 상한다"면서 "감독 자리는 공석이지만 좋은 결과를 내려는 모습이 선수들에게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혁순 감독대행은 "내용보다 결과를 가져오려고 했다. 전술, 전략보다는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정신적인 부분에서 교감을 갖는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감독 없는 설움을 짜릿한 잔류극으로 승화시킨 서울 선수단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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