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우승투지' 몰아친 울산 '찐'팬들의 힘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0-10-07 05:30


사진제공=울산 서포터 처용전사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강한 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한 것이다.'

한가위 연휴가 한창이던 지난 2일 K리그1 울산-상주전을 앞둔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의 분위기는 결연했다.

파이널A 첫라운드 대구 원정에서 2-1로 앞서며 승점 3점을 다잡았던 경기를 놓쳤다. 라인을 바짝 올린 대구에 맞서 후반 라인을 내린 울산이 결국 추가시간 박한빈에게 극장 동점골을 허용하며 2대2로 비겼다. 전북이 상주를 잡으며 양팀의 승점 차가 사라졌다. 한때 승점 5점 차로 여유 있게 선두를 질주했던 울산이 9월 들어 부진했다. 광주, 대구에 비기고, 전북에 패한 후 인천을 잡았지만 이후 다시 포항, 대구에 잇달아 비기며 파이널라운드 시작과 함께 전북에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한 것. 뒷심이 필요한 시기에 시원한 승점을 쌓지 못하자 울산 팬들은 난리가 났다.

리그 선두 울산은 올 시즌 24경기에서 16승6무2패를 기록했다. '유이'한 패배는 모두 전북전에서 기록했다. 51득점 18실점, 리그 최다득점, 최소실점이다. 사상 최고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울산 팬들에게 만족이란 없다. 선수단과 마찬가지로 목표는 화룡점정, 오직 15년만의 우승뿐이다.

국가대표에 9명이 차출되는 초호화군단, 역대 최고의 성적 속에 팬들의 기대치 역시 역대 최고다. 올 시즌 울산은 '비겨도 안되는' 팀이 됐다. 더군다나 매경기가 결승전이라는 파이널A 첫 경기에서 막판 보수적인 전술로 승점 3점을 놓치자 울산 현대 SNS와 축구 게시판, 울산 팬페이지를 중심으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사진제공=울산 서포터 처용전사
무관중 시대, 우승이 누구보다 간절한 울산 서포터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상주전이 열리던 날, '처용전사' 등 서포터 대표들이 울산 구단의 허락하에 관중석에 10여 개의 '플래카드' 격문을 내걸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강한 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한 것이다.' '15년의 기다림.'… 선수단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 우승을 향한 열망을 전달했다. 세심한 울산 팬들은 대구전에서 교체투입됐다가 전술상의 이유로 재교체된 이동경의 마음도 살뜰히 살폈다. 사실 이 경기는 포르투갈 보아비스타행을 앞두고 일찌감치 선수단에 작별인사를 건넨 이동경의 고별전이었다. 울산 구단은 선수의 미래를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렸지만 막판 보아비스타와 선수 개인협상이 결렬되면서 최종단계에서 이적이 무산됐다. 울산 유스 출신 국대, 왼발의 이동경은 울산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중 하나다. '동쪽하늘 가장 빛나는 별, 東炅 (동경)'이라는 플래카드로 이동경의 미래를 응원했다.

'전쟁은 팬들만 준비하는가' '우리는 여기 남는다' 돌직구 질책 속에도 '찐'팬들의 애정이 묻어났다. 직관은 아니지만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뜻도 담겼다.

상주전을 앞두고 평소처럼 몸을 풀기 위해 경기장에 들어선 울산 선수들은 서포터들의 소리 없는 외침에 마음을 다 잡았다. 전반 2분만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그뿐이어다. 정승현의 2골, 비욘 존슨의 2골에 힘입어 4대1 대역전승을 거뒀다. 이튿날 포항이 전북에 1대0으로 승리하면서 울산(승점 54)과 전북(승점 51)의 승점차는 3점으로 다시 벌어졌다. 울산 팬들과 선수단이 하나 돼, 함께 빚어낸 승리였다.


이날 멀티골로 승리를 이끈 정승현은 '올시즌 울산은 비겨도 욕먹는 팀'이라는 말에 "비기면 욕 먹는 것은 솔직히 신경 쓸 틈도 없고, 내 자신이 더 열받고 더 분하다"고 했다. "대구전은 비겼지만 정말 진 것같은 경기였다. 파이널라운드에선 비기면 진 것이나 다름없다. 끝나고 잠도 못잤다. 계속 생각나고, 분한 마음에 잠을 못이뤘다"고 털어놨다.

정승현은 팬들이 함께 만들어낸 승리라는 말에 동감했다. "경기 전 몸을 풀면서 관중석에 내걸린 팬들의 걸개를 봤다. 팬들의 간절함이 선수들에게 전해졌고, 큰 동기부여가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선수들의 진심을 전했다. "우리 선수들 모두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매경기 목숨을 걸고 나간다. 결과가 안따라올 때 정말 힘들다. 경기장에 서면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죽기살기로 한다는 것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한다. 팬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압도적으로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다. 꼭 좋은 결과를 갖고 와서 마지막에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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