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감독?" '베트남 한류'정해성 호치민 감독,수상X황당한 경질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0-07-26 16:09


사진=호치민 구단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베트남 프로축구 V리그1 호치민의 새 역사를 쓴 정해성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정 감독은 지난해 호치민 지휘봉을 잡은 후 2017년 승격 이후 2년 연속 12위에 머물던 팀을 준우승시켰다. 리그 컵에서도 사상 최고 성적인 4강에 올랐다. 한일월드컵 4강, 남아공월드컵 16강 수석코치 출신, K리그 제주, 전남 감독을 역임한 25년 경력의 리더십으로 호치민 구단을 맡은 정 감독은 사상 첫 AFC컵 진출까지 이끌며 새 역사를 썼다.

호치민은 새시즌 AFC컵과 리그 경기를 병행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시기 정 감독은 베트남에서 줄곧 호치민 팀과 함께 했다. 11경기에서 5승2무4패(승점 17)로 현재 리그 5위지만 2위 비텔과의 승점차가 불과 2점에 불과하고 스플릿 리그 포함 경기가 많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감독 교체를 통보받았다.

마지막 경기가 된 지난 24일 하노이전은 K리그 '슈퍼매치', '동해안더비' 부럽지 않는 흥행 매치, 대단한 라이벌전이었다. 만년 하위팀 호치민이 지난해 준우승하며 '디펜딩챔피언' 하노이와의 경기는 리그 최고의 '더비'로 급부상했다. 무려 2만 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10만 동(약 5100원)짜리 입장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돼, 경기장 앞에선 10배가 넘는 100만 동(약 5만1000원)을 호가하는 암표까지 나돌았다.

이날 전반전 호치민은 극강의 경기력으로 하노이를 압박했다. 페널티킥을 불 법한 핸드볼 파울도 2번이 나왔지만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V리그1 14개팀 중 6개 팀을 소유하고, 리그 전반을 지배하는 '절대 강자' 하노이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후반 27분 선제골을 허용한 후 집중력이 무너진 호치민이 0대3으로 패했다.

지난 1년 8개월간 입을 꾹 다물어왔던,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출신 정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판정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한 기자가 "이런 오심의 경우 한국은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했다. 정 감독은 "K리그는 VAR을 도입했다. 확인 후 판정을 정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답했다. "오늘 우리가 져서 핑계대는 것이 아니다. 심판은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 내 원칙이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장에 온 2만 관중, 호치민 팬들이 이 판정들을 어떻게 생각하겠나. 모처럼 2만 관중을 꽉 채웠다. 이런 분위기에서 죽기살기로 뛰는 선수들 앞에 결과가 판정에 따라 좌우되면 경기는 힘을 잃는다. 관중들도 다시 오지 않는다. 베트남 축구 발전을 위해서 절대 이래선 안된다"고 작심하고 할 말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며 기자들에게 "심판 이야기를 해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취재진은 오히려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정 감독의 작심 발언 이후 베트남 일부 언론에선 '이대로는 안된다. 심판위원장을 외국인으로 바꿔야 한다. 심판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호치민 구단 수뇌부는 하노이전 이튿날인 25일 기다렸다는 듯 정 감독을 호출, 돌연 경질 의사를 전했다.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한 구단 사장이 지휘봉을 잡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감독에겐 곧 지을 축구센터의 센터장과 기술위원장 역할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시즌 중 황당한 경질 통보였다. 정 감독은 26일 "제안은 감사하지만 그만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동안 호치민은 외국인 감독의 악명 높은 무덤이었다. 이전 외국인 감독들이 줄줄이 3~4개월만에 경질됐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출신 지도자로서 열과 성을 다한 정 감독은 지난해 11월 '2+1년' 재계약으로 호치민과 장기적인 미래를 약속한 바 있다.


정 감독은 "1년 8개월간 이곳에서 선수, 팬들과 좋은 그림을 그렸다. 감사했다. 좋은 기록도 남겼고, 좋은 평가도 받았다.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선수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지도자로서 어떤 미련도 없다"며 허허롭게 웃었다.

정 감독은 "사람은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가 중요한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프로답게, 끝까지 팀을 향한 책임을 잊지 않았다.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하고 잘하라고 격려하며 이별의 정을 나눴다. 프로답지 않은 수상한 경질에도 '대한민국 대표 지도자' 정 감독은 품격을 잃지 않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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