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물병X발열첵' 프리시즌만 3개월째, 울산 훈련장의 흔한 풍경[SC리포트]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0-03-31 06:07


주말 휴가를 마치고 울산 훈련장에 복귀한 이근호 박주호 등 울산 현대 선수들이 30일 클럽하우스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받고 있다. 울산 훈련장에선 경기전 장민기 주무 등 지원 스태프들이 물병 뚜껑에 선수 개개인의 백넘버를 써넣어 '1인 1물'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울산 현대 구단

"당연히 물병마다 선수번호를 매겨서 각자 자기 물만 마시도록 하고 있습니다."

감염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주로 비말을 통해 전염된다. 일부 종목의 경우 훈련이나 경기중 무심코 물을 나눠마시는 관행이 문제가 됐다. 김도훈 울산 현대 감독은 훈련장에서 선수들이 물을 어떻게 마시고 있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1인1물" 원칙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물병마다 선수 각각의 번호를 매겼다"고 했다.

1월 초부터 시작한 K리그 각 구단의 동계훈련이 어느덧 3월 말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계훈련을 넘어 사상 초유의 춘계훈련이다. 유로2020,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고, 유럽 5대 프로축구리그가 4월말까지 전면 중단된 가운데 K리그 개막 일정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축구 고픈' 팬들도, 팬들이 보고픈 선수들도 그라운드의 봄을 열망한다. 3개월 넘게 이어지는 기나긴 프리시즌, 각 구단이 가장 관심을 쏟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선수 안전'이다. K리그 선수 가운데 한 사람의 확진자라도 나올 경우 리그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책임감과 긴장감으로 선수도, 구단도 매순간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울산 현대 구단은 선수들에게 일주일에 2~3개 마스크를 지급하고 있다.

박주호, 이근호가 울산 현대 클럽하우스에 들어오며 발열 체크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울산 현대 구단
30일 오후 사흘 반의 주말 휴가를 마친 후 이근호, 박주호 등 마스크를 착용한 선수들이 울산 클럽하우스에 들어섰다. 울산은 상비 마스크를 선수들에게 일주일에 2~3개씩 지급하고 있다. 발열체크도 철저하다. 지원 스태프들이 입구에서 1차 발열체크를 한 후 치료실 입구에서 한번 더 열을 잰다. 의무실에선 선수들의 체온 기록 파일을 철저히 관리한다. 훈련 날이면 스태프들은 바쁘다. 매직펜으로 물병 뚜껑에 선수번호를 빼곡히 써넣는다. 아무리 원팀이라지만 코로나 위기 속에 '내물, 네물'은 따로 있다. 김도훈 감독은 "개인의 건강관리도 프로답게 해야 한다. 나 하나의 실수로 리그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행동이 팬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에게 손 자주 씻고,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고, 건강관리 잘하라고 수시로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선수단 주무' 장민기 대리는 "구단 입장에서 챙겨야할 부분도 많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코로나 안전수칙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주니오, 불투이스 등 아이들이 있는 외국인선수들의 경우 훈련 외 시간을 철저히 가족과 집에서 보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호주 출신 풀백 데이비슨의 경우 가족들이 지난주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 중인 호주를 떠나 '더 안전한' 울산에 도착했다. 데이비슨은 스스로 호텔방을 잡고 가족들과 격리생활을 자청했다. 울산 선수단의 안전을 위한 자발적 조치였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집이 있는 경우, 불가피하게 상경해야 하는 경우엔 '자차'를 이용한다. 방향 맞는 선수끼리 한차로 이동하는 자발적인 '카풀 시스템'이 정착됐다.


코로나19 위기속에 선수단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구단과 스태프들의 숨은 노고. 울산 현대 선수단 지원 스태프들이 훈련전 선수들이 마실 물병에 일일이 등번호를 써넣고 있다.   사진제공=울산 현대 구단

울산 현대 클럽하우스 훈련장  사진제공=울산 현대 구단
코로나19로 인해 2월 말부터 일정이 연기됐다 취소됐다를 반복하면서 각구단마다 안전과 함께 선수단의 경기리듬,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큰 과제가 됐다. 설마 했던 프리시즌 3개월이 4개월까지 늘어날 수 있다. 반복되는 루틴에 지루함도 슬슬 올라온다. 리그 개막 후 이 리듬과 분위기를 어떻게 잘 관리했는지가 시즌 성패를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경기상대나 또렷한 목표가 없이 훈련집중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울산은 당초 4월4일 포항전을 '가상 D데이'로 잡고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자체경기를 통해 경기리듬을 유지해왔다. 토요일 경기 기준으로 4~5일 패턴의 훈련, '5일 사이클'로 고강도, 저강도, 회복훈련, 휴가 식의 리듬을 한 달째 유지해왔다. 올시즌 국대급 베테랑들을 폭풍영입한 울산으로선 발 맞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됐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부상 재활중이었던 이근호도 지난주 팀에 복귀했다. 피로골절 부상중인 박주호를 제외한 선수단 전원이 1군 훈련에 합류했다. 이청용, 고명진, 윤빛가람 등 클래스가 다른 선수들이 완벽한 '더블 스쿼드'를 통해 자신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프리시즌이 어느새 4개월로 접어드는 상황, 김도훈 감독은 "지루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험 많은 선수들이 슬기롭게 분위기를 잘 유지해주고 있다. 그래도 4월 말에는 경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축구가 그저 당연한 줄 알다가, 축구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즈음"이라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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