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경기도 못하는 상황, 청백전 효과는 있을까?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20-03-30 05:30


사진캡처=제주 자체 청백전 네이버 중계 화면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제대로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한 감독의 푸념이다. 전례없는 사태에 모두가 '멘붕(멘탈붕괴)'이다. 코로나19 사태로 K리그 개막이 연기된지 한달이 지났다. 2월 29일만을 바라보고 겨울을 보냈던 각 팀 선수단은 예상치 못한 개막 연기에 힘이 빠졌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 없는 노릇. 다시 축구화 끈을 조여 매고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성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 김기동 포항 스틸러스 감독은 "선수단의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고 훈련 강도를 높여 다시 인위적으로 집중력을 올리려니 부상 염려 등이 따른다. 이래저래 답답한 상황이다"고 했다.

사실 이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컨디션을 유지하며 전술 훈련을 진행하는 게 다다. 이미 겨우내 체력훈련을 시행한 만큼, 다시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선수들의 몸이 완전히 망가진다. 지금은 일반체력보다는 경기를 90분간 소화할 수 있는 경기체력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흔히 현장에서는 '숨이 트인다'고 하는데, 아무리 체력훈련을 한 선수들이라도 한번에 90분을 소화할 수 없다. 계속된 스프린트, 몸싸움, 여기에 전술적 움직임까지 동반된 선수들의 경기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얼마만큼 실전을 방불케하는 연습경기를 진행하느냐는 각 팀의 준비 포인트 중 하나다. 각 팀들이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연습경기를 하는지 공을 들이는 이유다.

사실 3월초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연습경기가 펼쳐졌다. 개막 연기 후 훈련만을 진행하던 각 팀들은 실전에 갈증을 느끼며, 조금씩 연습경기의 폭을 넓혔다. K3나 대학팀은 물론, 좀처럼 하지 않던 같은 디비전팀과의 연습경기까지 이어졌다. 인근 거리의 팀과 중립지역에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17일부터 연습경기마저 길이 막혔다. 프로축구연맹은 코로나19 확산 금지를 위한 대응 수위를 높이자는 의미로, 외부팀과의 연습경기 중단을 결정했다. 시즌 준비의 마지막 보루마저 사라진 셈이다.

어쩔 수 없이 각 팀은 청백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수원, 제주 같은 팀들은 팬들을 위해 자체 청백전 생중계라는 이벤트를 기획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같은 청백전이 경기력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전제한 한 감독은 "경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사실 선수단 경기력에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연습경기의 의미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본 경기에 앞서 실제와 유사한 환경에서 경기를 펼쳐보고, 두번째는 선수들을 점검하고, 세번째는 준비한 전술, 전략을 테스트하거나 상대의 전술, 전략에 대한 대응법을 실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백전은 선수 점검 외에 이렇다할 효과를 보기 어렵다. 한 전문가는 "친한 사이끼리, 잃어도 상관 없는 상황에서, 서로 패를 까고 하는 카드게임을 하는 것과 똑같다. 긴장감도, 집중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각 팀의 청백전을 보면, 주전급 선수들이 모인 팀이 백업 선수 위주의 팀에 패하는 경우가 많다. 한 감독은 "아무래도 백업 선수들은 주전 발탁을 위해 더 열심히 뛸 수밖에 없고, 주전급 선수들은 혹시 모를 부상에 대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오는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렇다고 전술적 대응을 준비하자니, 같은 전술을 연습해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물론 앞서 언급한대로,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연습경기도 막힌 지금, 청백전은 실전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코로나 정국의 현실이다. 때문에 어렵게 개막하더라도, 각 팀들이 정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저승사자'로 불리며 한국대표팀의 체력을 담당한 피지컬 코치 레이먼드 베르하이옌은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로 중단된 유럽 리그에 대해 "선수들이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시즌을 시작하는 것은 러시안룰렛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최대한 많은 연습경기를 치른 후 시즌을 재개해야 한다"고 했다.

K리그도 기억해야 할 메시지다. K리그는 시즌 중단이 아닌, 연기인 만큼 상황이 조금 낫지만, 선수들이 100%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만큼은 똑같다. 최대한 빨리 K리그의 문이 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경기의 질도 담보되어야 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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