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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7 우승 멤버들의 시련 "장기계획 필요, 우리가 더 잘해야죠"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9-06-18 05:56


[랭스(프랑스)=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여자축구 발전? 장기계획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프랑스여자월드컵 A조 조별리그 최종전 노르웨이전(18일 오전 4시)을 앞두고 '윤덕여호 94라인' 여민지(26·수원도시공사), 이금민(25·경주한수원), 장슬기(25), 이소담(25·이상 인천 현대제철)을 만났다. 이들은 2010년 FIFA 17세 이하(U-17) 여자월드컵 우승 멤버다. 프랑스여자월드컵과 겹친 시기, 남자 20세 이하 대표팀 후배들이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 쾌거를 썼다.

짜릿한 환희의 순간, 그로부터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들의 우승은 여전히 FIFA대회에서 한국의 최초, 유일의 기록으로 남았다. 거침없이 세계를 호령했던 1993~1994년생 소녀들은 WK리그와 A대표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이금민과 이소담이 캐나다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월드컵에 출전했다. 여민지와 장슬기는 생애 첫 월드컵이었다. 그러나 9년만에 도전한 성인 월드컵 무대는 쓰라린 시련이다. 한국은 개막전 개최국 프랑스에 0대4로 패했고, 2차전 나이지리아에 0대2로 패했다. 2회 연속 16강의 꿈이 멀어졌다. 한때 세계 챔피언이었던 소녀들이 아쉬움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

더 높아진 세계의 벽, 장기 발전계획이 필요하다

마지막 노르웨이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15일, 프랑스 랭스 선수단 호텔에서 만난 4총사는 이구동성 '세계의 벽'을 이야기했다. 이소담은 "4년 전보다 세계의 벽이 높아졌다"고 했다. "세계 여자축구는 빨리지고 강해지고 발전했는데 저희는 제자리에 있지 않나 하는 죄책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이금민 역시 "세계의 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했다. 실망감, 상실감이 크다"고 했다. 9년 전 골든볼의 주인공, 여민지는 "열심히 잘 준비한다고 했는데 막상 부딪쳐보니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스피드도 피지컬도 많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풀백' 장슬기는 "한국 여자축구가 발전하려면 개인들이 그동안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WK리그도 지금보다 더 많이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2015년 캐나다 대회 16강 이후 지난 4년간 한국 여자축구는 단 5번의 A매치를 치렀다. 2015년 11월 호주, 2016년 6월 미얀마(2연전), 2017년 10월 미국(2연전), 2019년 4월 아이슬란드(2연전), 6월 스웨덴과 A매치가 전부다. 그 4년새 유럽 등 세계 여자축구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유럽 강호들의 경기력을 영상으로 분석했지만 실제로 부딪친 상대는 영상보다 더 강했다. 4년전 캐나다에서 프랑스와의 16강전을 뛰었던 이금민은 "그때는 몇몇 윙어들이 정말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전 선수들이 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더 빠르고 더 강해졌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털어놨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여자축구 '장기 발전 계획'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17세 대회 우승효과는 딱 한 달 갔던 것같다. 그저 마냥 좋았던 기억만 난다"고 했다. "연령별 대회에 우승하면 그걸로 끝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 안주한다. 성인 레벨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월드컵 한다, 준비하자' 식으로 단기 대회에 맞춰 벼락치기하듯 한다. 외국선수들에 비해 기량도 떨어질 뿐 아니라, 팀 개인들간 실력차도 크다. 원팀의 조직력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장기 프로젝트가 없다보니 그것마저도 힘들다."

이 악문 94라인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


2019년 현재 프랑스 여자축구 등록선수는 13만8883명, 노르웨이는 11만4059명이다. 한국은 1472명이다. 동호인을 모두 합쳐도 5000명 남짓이다. 437명의 대학선수, WK리그 선수중 선발된 23명이 월드컵 무대에서 뛰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그러했듯 여자축구 선수들은 남 탓, 환경 탓 하지 않았다. 우리가 더 잘해야, 여자축구 후배들의 길이 열린다는 책임감으로 여기까지 묵묵히 걸어왔다. 한국은 2023년 여자월드컵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조소현, 지소연이 지난 10년간 에이스의 무게를 견디며 이들을 이끌어왔듯이, 4년 후엔 이들이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중심에서 후배들을 이끌어가야 한다.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바라는 것이 있냐'는 질문에 스스로를 돌아봤다. 여민지는 "신세계 그룹이 향후 5년간 100억 원을 후원해 주신다. 우리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이소담 역시 "우리가 결과를 내야, 바랄 것도 있고 할 말도 있다"며 말을 아꼈다. "축구 저변, 환경이 좋지 않아도, 적은 인원 속에서도 우리 스스로 발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장슬기는 "선배 언니들이 지금까지 호소해왔던 문제들이다. 언니들의 노력 덕분에 원했던 일들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다. 언니들한테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우리가 그 정신을 잘 이어받아서 더 열심히 하다보면 여자축구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금민은 "여자축구가 발전하려면 개인이 발전해야 한다. 여자축구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우리가 더 잘해야 하고, 관심을 받으려면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랭스(프랑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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